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 충청매일 ] 하던 일이 마무리되어 시간적 여유가 조금 생기면 2009년 돌아가신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나 그다음 해 돌아가신 법정 스님의 수필집을 반복해서 읽곤 한다. 두 분의 글을 읽으면 삶이 아름답고, 죽음에 대하여도 준비되어 있고, 큰 욕심 없이도 평범함과 잔잔한 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삶에 있어서 진 빚을 다 갚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아름다운 빚’이란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강원도 홍천군 희망리라는 곳에 용간난이라는 할머니가 산다. 1979년 할머니 남편이 약초를 캐러 갔다가 담뱃불을 떨어뜨려 산불이 낫다. 이에 대한 죄로 벌금 130만원을 내도록 했다. 그러나 살림이 어려워서 한 번에 내지 못하게 되자 분할 상환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할아버지가 중풍을 돌아가시면서 할머니에게 "나 대신 벌금을 꼭 갚아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할머니는 자식도 있고 형편이 어려워 매년 3만 원에서 10만원씩 거르지 않고 벌금을 냈다. 나이가 들어 근력이 없어져서도 일당 7천원의 허드렛일로 살아가면서도 돈을 모아 해마다 벌금을 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 2001년 벌금을 완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제 빚을 다 갚았으니 20년 동안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하다. 저승에 간 남편도 이젠 편히 쉴 수 있겠다."집사람이 빚지고는 못하는 성격이라 은행에 큰 빚 없이 살았다. 

 그러나 내 능력과 성격에 비추어 비교적 안정적인 공무원 신분의 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가끔 생각하면 항상 국가와 사회에 빚을 진 느낌이다. 장영희 교수나 법정 스님은 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면서 그 글에 대하여 빚을 졌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법정 스님은 더는 빚을 지지 않기 위해 유언으로 자신의 글을 재출간하지 말기를 유언으로 남겼다. 

 최근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600만명의 관객을 돌파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군사 반란과 5·18로 숨진 개인에게 진 빚이 화두이다.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 동조 세력 가운데 그 한마디 말로 빚을 갚으려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공분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그나마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들 노재헌이 5·18 국립묘지를 방문해 사죄하여 파주 통일동산에 한 줌 재로 묻힐 수 있었지만, 전 대통령은 받아주는 곳은 없다. 

  종교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과 사회에 빚을 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서로는 그 빚을 앉고 세상을 떠난다. 그렇지만 용간난 할머니처럼 빚을 갚지 않더라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빚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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