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최전선 충북대학교병원 응급실
의료진, 응급처치 등 분주 간단한 점심 식사도 감사
경증환자도 응급실 찾아 진료 순서 항의 등 소란
늦은 밤 단골은 주취환자 난동·진료 트집 등 낭패

119 구급대원이 이송한 응급환자가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북대학교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오진영 기자

[충청매일 최재훈 기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넘나들고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곳, 그곳은 병원 응급실이다. 응급실에는 빠른 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매일 찾아온다. 응급상황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마음 놓고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응급실의 의료진들은 응급의료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충청매일은 충북대학교병원 응급실 의료진을 ‘24시간 동행취재’ 했다. 

 

●오전 7시~오후 2시, "나 먼저 진료" 경증환자 아우성.

지난 10월 24일 오전 7시 충북대학교병원 응급실. 간호사들의 새벽 근무가 마무리되고 오전 근무가 시작되는 교대시간이다.

충북대병원 응급실 의료진은 18명(당직 교수 2명, 전공의 4명, 수련의 3명, 간호사 9명)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응급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당직 교수와 전공의는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24시간 또는 12시간씩 교대로 응급실을 지키고 있다. 간호사들은 오전 7시와 오후 3시, 오후 10시 3교대로 운영된다.

"새벽에 주취 환자로 한차례 전쟁을 치렀다"는 밤 근무 의사와 간호사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오전 근무 의료진은 전날 내원한 환자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응급실에 있는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전공의 1년차 박동현씨는 "아침밥을 포기하고 잠을 선택했는데도 피곤하다"며 "피곤을 쫓기 위한 커피를 들고 왔다"고 말했다.

교대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전 8시15분 119구조대를 통해 교통사고 환자가 실려 왔다. 사고로 인해 어지러움과 허리·복부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였다. 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한 구급대원이 환자 정보를 간호사에게 전달했다.

일사분란하게 의료진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상처 부위를 살피고 채혈 등이 이어졌고 중증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중증도에 따라 처치 순서와 전용진료 구역 등이 결정된다.

의사가 처방을 내리자 간호사는 투약바코드를 정리했다. 환자에 대한 정보를 전산망에 기록했다. 환자 상태를 의료진 모두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업무다.

교통사고 환자가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복통을 호소하며 직접 병원을 찾은 50대 남성이 왔다.

그는 "밤새 너무 아파 한숨도 못잤다"며 빨리 치료해달라고 의료진에게 재촉했다.

같은 시각 다리 골절로 인해 119구급차를 타고 실려 온 60대 여성 환자도 도착했다.

골절 환자의 상황부터 체크하자 50대 남성은 의료진에게 소리를 지르며 "내가 먼저 왔는데 진료를 봐주지 않냐"며 항의했다.

처치 순서를 두고 의료진에게 폭언을 퍼붓는 환자들도 부지기수라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한 의료진은 "진료 순서 등의 불만으로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옆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은 환자가 있어도 먼저 진료해달라고 소란이 일어나는 곳이 응급실"이라고 말했다.

의료진은 질환의 중증도를 판단하기 어려워 응급실로 찾아오는 일반인들의 우려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경증환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하소연했다.

오전 사이 골절, 타박상, 찢어짐, 복통, 어지러움 등을 호소하는 응급환자들이 30명 넘게 응급실을 찾았다.

이날 평일 오전보다 많은 환자가 밀려들면서 점심시간은 늦어졌고 낮 12시40분은 돼서야 의료진은 1명씩 구내식당을 향했다. 20분 내외로 식사를 마치고 돌아간 응급실에는 환자들이 더 늘어 있었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북대학교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간호사들이 의사의 지시 사항을 확인하고 있다. 오진영 기자

●오후 3시~오후 9시, 타 지역 방문 소아환자 진료 공백은 충북지역도.

오후 3시가 되자 간호사들의 교대가 이뤄졌다.

응급실 근무 6년째인 전서영 간호사는 "많은 응급환자가 있는 날이면 자리에 앉아 있을 여유도 없는 경우가 있다"며 "그나마 오늘은 점심이라도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부 처치가 끝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아직까지 병상에 남아 있는 환자도 많았다.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환자를 살피는 보호자, 수차례 찾아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냐며 묻는 보호자 등 오전보다 응급환자들이 많았다.

오후 7시가 넘어가면서 응급환자들과 보호자들의 요구도 늘기 시작했다.

"환자가 추운데 담요 좀 주세요", "응급실에 급하게 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뭐 좀 먹게 하면 안 될까요?"

의료진은 진료를 마친 환자를 보내고 병상을 확보하고 새로 온 환자들의 응급처치를 돕는 일로 바삐 움직였다.

오후 9시가 넘어서자 소아환자가 응급실을 찾았다.

아픈 딸 아이를 위해 진천부터 30km를 넘게 운전해 충북대병원까지 찾아온 것이다.

전국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소아과 진료 공백 문제는 충북지역도 마찬가지다.

전서영 간호사는 "소아과 야간 진료를 보는 곳이 거의 없고 소아 응급실이 마련된 곳이 없다보니 밤 사이 소아환자의 방문은 종종 있다"며 "세종, 진천 등 인근 지역에서 오는 환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북대학교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며 치료를 하고 있다. 오진영 기자

●오후 10시~오전 7시, 응급실 늦은 시간 단골은 ‘주취 환자’

오후 10시가 넘어서자 응급실에는 주취 환자도 실려왔다. 야간 응급실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술 취한 환자다.

술 마시고 쓰러진 사람을 지나가던 시민이 발견해 신고하면 일단 응급실로 오게 된다.

응급실에서는 환자가 술 때문에 쓰러졌는지, 아니면 술 외에도 뇌출혈이나 다른 이상으로 쓰러진 것은 아닌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김상철 충북대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은 "통상 주취자 중 10% 정도만 실제로 위급한 상태이고 나머지는 그냥 취한 상태"라며 "그러나 혹시나 모를 상황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의식이 없으면 중증환자로 보고 처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취 환자의 주된 문제는 ‘난동’이다.

6년차 간호사인 문선재씨는 "치료는 받지 않고 응급실을 돌아다니면서 난동을 부리거나 욕설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주취자 중 침대에서 떨어지는 낙상사고의 우려도 있어 항시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동 뿐만 아니라 주취 환자에게 검사나 치료를 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도 발생한다.

문 간호사는 "길에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온 주취 환자가 구토 증상을 보이면 뇌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가 별 문제 없으면, 환자가 술이 깬 후 ‘돈 벌려고 마음대로 CT를 촬영했다’며 의료진에게 폭언이나 항의하는 곳이 응급실"이라고 토로했다.

새벽 2시가 되자 그나마 응급환자들의 방문은 뜸했다.

의료진들의 책상에는 출근할 때 사왔지만 다 마시지 못한 자양강장제와 커피 등 카페인 성분이 함유된 음료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날이 밝아오는 시간이 다가오자 의료진들은 각자 교대 전 처리해야 할 일들로 분주했다.

박동현 전공의는 "이 시간쯤 되면 다행히 오늘 하루도 무사히 이렇게 지나간다는 생각을 한다"며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응급환자를 살려내거나 회복 후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 환자를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24시간 동안 방문한 응급환자는 91명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새벽까지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도 응급환자를 위한 의료진의 업무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25일 오전 7시 응급실의 하루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북대학교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오진영 기자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규(KTAS)
읍급실 폭행, 진료방해는 범죄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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