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공예인 뜨거운 손길을 찾아서] 연방희 섬유염색가
세무사·시민운동가 ‘독특한 이력’…어머니 돕던 기억 떠올라 염색에 관심
20여년간 ‘고래실 염색교실’ 운영…자연 재료 직접 찾아 실험 거쳐 강의
소득 창출보다는 지역사회에 염색문화 전파·소통하는 것으로 만족 느껴

충북 진천군 문백면 진천공예마을에서 섬유염색 전문 고래실공방을 운영하는 연방희(70)씨.
연방희 섬유염색가.
진천공예마을 고래실공방.
고래실 염색교실 수강생들의 이름이 기수별로 목팍에 새겨져 있다.
진천공예마을 고래실 공방.
고래실 공방의 염색작업.
고래실 공방의 염색작업.
연방희 염색가가 가장 좋아하는 먹염색.
고래실 염색교실 수강생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기록한 교본.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세무사, 시민운동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공예인이 있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 진천공예마을에서 섬유염색 전문 고래실공방을 운영하는 연방희(70)씨다.

1980년대부터 세무사로 일해 이 계통의 사람들에게 염색을 한다면 ‘그 손으로 어떻게 비단을 만져’라고 묻고, 함께 염색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직업이 세무사라고 하면 ‘뜻밖’이라며 깜짝 놀란다. 충북 청주 지역사회에서 그만큼 이면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도 드물다.

유년 시절 가난한 집에서 자란 그에게 어머니는 종종 집안일을 시키곤 하셨다. 식혜 만드는 일이라든가, 된장, 호박고지 등을 만들 때 잔심부름 시키곤 하셨는데, 심부름을 할 때는 하기 싫었다. 하지만 훗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추억하게 되고 어머니와 함께 하던 집안일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집집마다 무명을 염색해 직접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때의 일들이 또렷이 기억났고 다시 제대로 염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하지만 그 무렵 1990년대 후반 청주에서는 염색을 배울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애초 잡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울을 오가며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섭렵하며 배우고 있었다. 전통공예 건축과정에서 대목반을 수강하고 단청, 매듭 등 관심 있는 분야를 하나씩 배워 나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전통 천연염색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이병찬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대상 수상자의 작업을 돕기 위해 염색 재료가 되는 쪽, 홍화, 자초 등을 구해주는 과정에서 그것이 내는 천연 색채에 매료된 것이다.

붉은색을 내는 홍화, 푸른 빛의 쪽 등에서 자연색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당장 천연염색을 공부하고 싶었다. 프로그램이 개설되기를 일일이 여삼추로 기다리다 드디어 1998년 중앙박물관에서 단기 12주, 장기 1년 과정의 염색교실이 개설됐다. 이 과정을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청주와 서울을 오가며 성실하게 수강했다.

이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수없이 실험을 거쳐 오래전 옛사람들이 사용한 방법을 재현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자연염색을 개발하기도 했다. 역시 가장 힘든 것은 재료를 수급하는 일이었다. 잿물 염색을 위해 숯을 만들어야 하는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재료를 여러 해 동안 찾아다녔다. 괴산 도안에서 농사지으며 혼자 재료를 구하고 실험하고 천에 염색하는 많은 실험의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이 작업들이 입소문 나자 한 대학에서 천연염색반을 열자고 연락이 왔다. 강좌를 개설했으나 예기치 않게 폐강되자 수강생들이 안타까워했다. 도안에 작업실이 있으니 그곳으로 오면 가르치겠다고 하자 6명의 수강생들이 도안 작업장으로 염색 공부를 하러 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0여년 간 청주지역에서 ‘고래실 염색교실’을 운영하게 됐다.

고래실 공방에서 염색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무상교육이지만 몇 가지 규칙이 있다. 한번 수강한 사람은 두 번 수강할 수 없으며, 작업장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나 수돗물과 전기요금은 내야 한다.

"처음에는 6개월 과정으로 했는데, 염색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를 직접 수급하는 것이므로 사계절 재료를 다 다뤄봐야 할 것 같아 1년 과정으로 늘렸습니다. 수강생들이 다양한 천연재료를 접해볼 수 있어 좀 더 깊이 있는 공부가 될 수 있었지요. 작업실을 문백으로 옮겼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한해도 거르지 않고 무료강의를 진행해 오다 코로나 19 창궐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요."

고래실 염색교실 덕분에 전문 천연염색 공예인이 탄생하는 등 지역사회에 염색문화를 전파하는 터줏대감이 되었다.

고래실 염색교실은 치자 염색을 시작으로 소목, 석록, 빈랑, 정향, 먹, 양파, 호두피, 오배자, 황토, 홍화, 가루쪽, 쑥, 보이차, 신나무, 생쪽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선 염색원료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다. 치자의 경우 어떤 지역에 분포돼 자라는지, 형태는 어떤 모습이며 어떤 성분이 있어 염색의 재료가 되는지 등 기초 공부를 진행한다.

다음에 염색의 효과와 특징에 대해 강의한다. 어떤 천에 사용해야 효과적인지, 재료 중 어떤 부분을 사용해야 하는지 등 강의를 진행한 후 본격적인 체험에 들어간다. 염색 재료와 천을 준비하고 직접 시도하면 한가지 강좌가 끝난다.

연방희 섬유염색가는 "천연염색은 일반 화학 안료와 다르게 사용할수록 깊은 맛이 나 싫증나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염색은 먹염색이다. 수강생들이 염색 교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날 시작해 그날 완성된 스카프를 두르고 갈 수 있다는 성취감 때문"이라며 "고래실 염색 교실의 목표는 수강을 통해 본인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공동체 의식이 무너졌지만 고래실 작업장에서는 공동작업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염색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지 않는다. 그저 작업과정이 좋아 혼자 작업하고 이웃에 선물하며, 수백 명의 제자를 배출하고, 많은 제자들이 공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작가 생활을 하려면 작품을 판매해야 하는데, 저는 세무사라는 직업이 있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염색이 좋아 지역사회에 널리 전파하고 서로 소통하며 더불어 소중한 공동체 의식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고래실 염색 교실 수강생들은 2, 3년에 한 번씩 그룹전을 개최한다. 뭔가 목표가 있으면 작업의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는 그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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