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철 서원대 명예교수(한국지명학회·국어사학회 고문) ‘미호강’ 명칭 관련 특별기고(4)

공적 지명 ‘養仁(양인)’에 밀려 속지명으로 활용된 ‘미꾸지’
지형의 특징이 반영된 이름 ‘미꾸지’의 끈질긴 생명력

<사진1> ‘미꾸지’ 마을 입구 표지석.
<사진2> ‘미꾸지’ 마을 입구.

[충청매일]

 

<목차>

1. 합리적인 지명 연구를 위한 전제(1): 언어와 문자

2. 합리적인 지명 연구를 위한 전제(2): 지형과 지도

3. ‘미호’의 원초형 ‘미꾸지’ 명명의 배경

4. ‘미호’의 원초형 ‘미꾸지’의 생명력

5. ‘미꾸지’의 후부요소 ‘꾸지(←구지←곶)’의 한자표기: ‘串’에서 ‘湖’로

6. ‘미꾸지’의 전부요소 ‘미’의 한자표기: ‘彌’에서 ‘美’로

7. ‘미곶’의 부상과 ‘동진’의 쇠퇴

8. 미호강 명칭 ‘미호’는 일제 잔재일 수 없다.

일단 부여된 지명이 객관성과 타당성을 확보하면서 활용되어 사회적 합의에 이르면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한자에 결합된 새김이 매우 보수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하는데 지명어의 경우에도 일상어에서 사라진 어휘가 연면히 활용된다. 예컨대, 지명어의 후부요소에 쓰이는 ‘-실’은 ‘谷(곡)’의 개념으로 오늘날 일상어에서 단독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밤실[栗谷], 북실[鐘谷], 곰실[熊谷], 안한실[內大谷]…… 등을 비롯하여 ‘-실’을 후부요소로 삼은 지명어가 ‘한국지명총람’에 5천74개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고구려지명에서 ‘水(수)’를 뜻하고 현대어에서 ‘매/메/미’ 정도의 발음일 것으로 추정되는 ‘買(ᄆᆡ)’가 청주의 지명에도 남아 있다. 낭성면 관정리에 속한 마을명 ‘머구미(墨井_’와 무심천의 지류인 ‘쇠미(金川)’에서 그 잔영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자화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건 늦은 시기이지만 ‘미꾸지’가 입말로 사용된 것은 아주 이른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이 가능한 것은 순우리말 지명 ‘미꾸지’가 한국지명의 원초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명의 원초적인 형태는 자연지리적인 측면, 즉 지형의 특징을 활용하여 고유어로 명명한 것이다. 이전 연재에서 살폈듯이 ‘미꾸지’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해당 공간의 자연, 즉 지형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발굴하여 명명한 것이다.

아미산(139.7m) 줄기가 미호강을 향하여 뻗어 내려 꼬챙이와 같은 모양을 한 지형적 특징에 ‘미꾸지’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그러므로 지형과 지명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관계 즉, 유연성이 확보되어 있다.

한국지명의 원초형인 고유어 지명은 대체로 지형과의 유연성이 성립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인명의 경우 본명이 아닌 별칭에서 흔히 나타난다. 별명은 어떤 사람의 외모나 행동을 비롯한 특징적인 부분을 고려하여 생겨나기 때문이다. 홀쭉이, 뚱땡이, 살살이, 넙죽이, 칠동이, 대단이…… 등과 같은 별명은 본명보다 오래 기억되는 속성을 지닌다. 지시 대상과 명칭 사이에 유연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형과 유연성을 지닌 지명의 경우 비록 다른 형태의 공식 명칭이 존재하더라도 속지명이 되어 입말로 활용되기 마련이다. ‘미꾸지’라는 지명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공식 지명의 지위까지 확보하기에 이른 것도 지형과의 유연성을 지닌 명칭이었기 때문이다

1957년 5월 18일 제83차 국무회의에서 지리연구소(현 국토지리정보원) 설치를 의결한 후 전국의 지명에 대한 조사 및 제정을 시행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미꾸지’가 마을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때 연기군 지명제정위원회가 1959년 6월 13일부터 6월 19일까지 조사하고 6월 20일에 제정한 ‘지명조사철’을 통하여 ‘미꾸지’가 ‘양인’과 더불어 공식 명칭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건에는 법정리인 ‘예양리’ 산하에 ‘강촌, 미꾸지/양인, 산속골, 예양/인동’ 등 4개 마을명과 다리명인 ‘스물두강다리/미호천철교’가 실려 있다.

특히 ‘미꾸지/양인’의 경우 그동안 공적 지명으로 활용되었던 ‘양인’이 뒤로 가고 속지명 ‘미꾸지’를 앞자리에 배치한 것이 눈길을 끈다. 더구나 <사진1>에서 보듯 예양1리 마을 입구에 세워진 표석에는 ‘미꾸지’만 살아있다.

예양리(禮養里)라는 법정리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명명한 것이다. 연기군 동이면의 양인동과 인동리가 주축이 되고 송리, 송담리 그리고 청주군 서강내이상면의 인천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연기군 동면 예양리(禮養里)가 되었다. ‘예(禮)를 기르고(養) 존중하며 배우는 곳’이라는 뜻을 담아 중국식 조어방식이 아닌 한국어 어순에 따라 명명하였는데 기존의 명칭인 ‘仁洞(인동), 養仁(양인)洞(동)’에 바탕을 둔 것이다.

‘미꾸지’는 지형의 특징을 감안하여 순우리말로 명명한 원초적인 지명이다. 반면 ‘인동, 양인(동)’은 이 지역에 세거해 온 식자층을 중심으로 ‘어진 사람을 양성함’, 또는 ‘어진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유교적 이념 실현을 목적으로 부여한 한자어 지명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해당 공간의 일차적이고 원초적인 지명은 ‘미꾸지’이고, ‘인동, 양인(동)’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생겨난 ‘예양리’는 유교적 이념을 배경으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부여된 이차적인 지명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혼란스러운 해방기를 거쳐 한국전쟁이 끝나자 정국의 안정과 함께 전국의 지명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표준지명을 제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자어 지명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순우리말 지명 ‘미꾸지’가 표준지명의 일원으로 등장하였다.

일반 대중에 의해 입말로만 구전돼온 ‘미꾸지’가 드디어 문어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적 지위를 차지한 한자어지명 ‘養仁(양인)’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속지명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던 ‘미꾸지’는 지형과의 유연성을 지닌 명칭이었기에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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