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공예인 뜨거운 손길을 찾아서- 김진규. 은소영 도예가 부부]

김진규, 인화문 분청에 매혹... 질서정연한 짜임 통해 완벽함 표현할 때 희열 느껴
최근 초심으로 돌아가 인화 분청 기본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세계 구축에 몰두
은소영, 정교한 백자 조형작업 통해 ‘내 마음의 안식처’ 표현

충북 진천군 문백면 공예마을에 작업실 ‘진도예’를 운영하고 있는 김진규 은소영 도예가.
은소영 도예가.
김진규 도예가.
작업실에 전시된 ‘푸른점 항아리’ 연작.
김진규 작, 분청인화모란문병, 28.5×28.5×28, 분청토,색화장토, 재유, 2019.
김진규 작, 분청인화모란문접시, 2018.
김진규 작, 분청인화문장신호, 41×41×54.5, 분청토,색화장토, 재유 2019.
은소영 작, 나만의 안식처2, 2015.
은소영 작, 기원하다, 2018.
김진규 작, dot series- blue, 분청인화문스툴, 2023.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일상이 꽃이고 꽃이 도자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도예가 부부가 있다. 김진규(50) 은소영(40), 둘은 닮은 듯 다른 작품세계를 공유하며 오순도순 충북 진천군 문백면 공예마을에 작업실 ‘진도예’를 운영하고 있다.

김진규 도예가는 작업을 시작한 이래 20여년 간 인화문 분청에 매혹돼 있는 작가다. 인화문 작업은 어두운 태토 위에 인화 도장을 하나씩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기법이다. 인화문에 온전히 집중해 반복적인 수많은 문양이 질서정연하게 짜여 있는 듯한 완벽함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다.

분청의 여러 기법 중 특히 인화문 기법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성정과 잘 맞기 때문이다. 무수한 반복으로 마치 참선하듯, 온 힘을 다해 몰입해 인화문 도장을 반복해서 찍어 전면을 꼼꼼하게 채웠을 때 묘한 희열을 느낀다. 털털하면서도 작업에 있어서는 완벽을 기하는 성품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이다.

2010년 한국공예관의 충북의 작가 초대전 김진규 개인전 ‘비움과 채움’은 인화문 분청사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방법은 인화문을 규칙적으로 찍어 바탕의 면을 채운 후 그 위에 꽃과 나무, 추상문 등 패턴이나 풍경을, 때로는 즉흥적 행위로 음각해 백토 상감하는 방법으로 기면 위에 회화적인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작가가 찍어놓은 인화문 위에서는 꽃과 새, 나무, 바람 등 다양한 자연의 일상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후 결혼과 함께 그의 작업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분청에 과감한 색을 입히게 된 것이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이나 녹색을 입히는 화려한 안료 사용이 도드라진다. 2018년 개인전 ‘일상이 꽃이다’에서는 인화문 위에 그린 꽃에 금분이 칠해지거나 작품 ‘분당연당초문합’과 같이 붉은색 안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어두운 태토 위에 흰 분장을 하는 일반적인 분청을 벗어나 전면에 색화장토를 사용함으로써 분청의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2019년에는 어두운 태토 위에 색화장토를 화려하게 칠한 후 다시 흰색 화장토로 덮어 은은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시 한번 변화를 주었다.

2021년 작업 ‘초심(初心)-분청인화문대호’는 물레로 기본형태를 만들고 면을 깎아낸 후 전면에 반복적인 수많은 문양을 넣어 표면 질감의 완성도를 높인 분청항아리 작업을 시도했다.

최근 작가는 현대적인 분청작업을 연구하던 중 전면에 색화장토를 사용하고 그중 흰 바탕에 푸른점을 찍는 분청인화문 ‘푸른점 항아리(DOT SERIES-BLUE)’ 연작 작업을 시작해 본격적 으로 제작중에 있다.

"저는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으며 작업해 왔습니다. 최근 작업인 ‘푸른점 항아리’ 연작(DOT SERIES-BLUE) 역시 파란 하늘과 바다에서 느껴지는 무한한 에너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앞으로 DOT SERIES는 색이 달라질 수도 있고 점이 한두 개 또는 많은 점들을 확대하거나 나열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될 것입니다."

인화문 작가로 알려진 김진규 도예가는 도장에 힘을 주고 찍어야 하는 기법이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현대 도예가들이 잘 시도하지 않는 분야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그는 분청을 처음 시작했던 초심의 자세로 돌아가고자 한다. 직접 제작한 인화문양을 나란히 찍는 전통기법이지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아내 은소영 작가는 두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느라 중간중간 작업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은 작가는 남편과 달리 백자에 몰두하고 있다. 2015년 첫 개인전 ‘내 마음의 안식처’(서울, 혜화아트센터)에서 마치 조형 작품처럼 정교한 백자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 제목 ‘내 마음의 안식처’가 말해 주듯이 작품은 입체적인 공간 안이 작가가 꿈꾸는 안식처가 아닐까 싶다. 백자토로 형태를 빚고 정교하게 조각을 통해 공간을 만들거나, 붙이거나 한다. 백자토는 까다롭고 예민한 편이다. 작품이 실패할 확률도 크다. 그 모든 과정을 감수하며 완성된 안식처에는 모란꽃이 피어 있기도 하고, 겹쳐진 창이 열릴 때마다 소중한 추억이 펼쳐지는 것 같다.

은 작가는 주로 투각과 부조 조각 기법을 사용한 장식적인 도예작업을 한다. 특히 백자 투각한 기물을 겹침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는 작업을 해왔다. 완성된 작품은 시각적인 즐거움과 안쪽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한다.

작품 소재로는 도예가의 일상이나 여행, 요가 동작을 백자에 조각해 지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한사람으로서 진정한 쉼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전통적인 투각기법의 미를 살려 현대적인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조형성이 강한 작업에서부터 기능이 있는 실용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은 작가는 결혼 후 2017년부터는 조각한 백자 위에 청화 안료로 그림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실용기 안에도 투각 기법과 청화 그림을 통해 심미성을 강조하며 평면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2018년 개인전 ‘월하풍경’(서울, 갤러리 H)은 서울에서 충북 진천이라는 공간과 결혼이라는 환경의 변화가 반영된 작품 전시였다. 달빛 아래서 소중한 사람들과 차를 마시고 요가를 하고, 작업하는 순간이 평면도자 작업을 통해 그림처럼 표현된 것이다.

"결혼 전에는 치열하게, 목숨을 걸듯 까다롭게 작업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환경의 변화가 작업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죠. 작업 공간도 도시에서 자연이 있는 이곳으로 옮겨져 좋았습니다. 삶을 즐기게 되었어요. 주어진 삶 속에서 순간순간에 대한 진정한 행복의 소중함을 느끼며 편안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은 작가가 도자에 회화를 접목한 것은 캔버스에 그림 그리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기도 하다. 평면 위에 입체적인 느낌의 부조를 새기고 색채 안료를 통해 그림이 되도록 하는 회화 작업을 병행하며 다양한 색채의 안료를 사용한다. 푸른 하늘에 노란 달이 떠 있기도 하고, 두고 온 도시의 빌딩 숲 위에 노란 초승달이 떠 있기도 한다. 이들 그림의 배경이 되는 바탕에는 언뜻 보면 푸른색 안료의 농담(濃淡)인 것 같지만, 실제는 무수한 글자들이 반복해서 그려져 있다. 이 독특한 글자들은 누구도 알아볼 수 없겠지만 자신만의 소망을 담은 기도문인 셈이다.

올 겨울 4쌍의 부부 도예가들 중 아내 작가들의 작품전 ‘나를 켜는 시간’전이 서울 삼청동에서 예정돼 있다. 육아와 작품이라는, 둘 다 소중한 두 마리 토끼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는 작가들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빚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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