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철 서원대 명예교수(한국지명학회·국어사학회 고문) ‘미호강’ 명칭 관련 특별기고(3)

(은적산→망덕산→)아미산 줄기가 미호강을 향해 내리뻗은 끝 지점
미[山]+곶[串]→미곶→미고지→미꼬지→미꾸지

<목차>

1. 합리적인 지명 연구를 위한 전제(1): 언어와 문자

2. 합리적인 지명 연구를 위한 전제(2): 지형과 지도

3. ‘미호’의 원초형 ‘미꾸지’ 명명의 배경

4. ‘미호’의 원초형 ‘미꾸지’의 생명력

5. ‘미꾸지’의 후부요소 ‘꾸지(←구지←곶)’의 한자표기: ‘串’에서 ‘湖’로

6. ‘미꾸지’의 전부요소 ‘미’의 한자표기: ‘彌’에서 ‘美’로

7. ‘미곶’의 부상과 ‘동진’의 쇠퇴

8. 미호강 명칭 ‘미호’는 일제 잔재일 수 없다.

 

<사진1> 미꾸지 일원 지형도 ㉠네이버 지도
<사진1> 미꾸지 일원 지형도 ㉡조선총독부 3차 지형도
 
 예양리 강촌에서 바라본 미꾸지 일원: 아미산 줄기가 미호강을 향해 뻗어 내린 끝 지점 ○ 부분이 ‘미꾸지’이다. □ 안의 시설물은 미호대교의 주탑이다.
예양리 강촌에서 바라본 미꾸지 일원: 아미산 줄기가 미호강을 향해 뻗어 내린 끝 지점 ○ 부분이 ‘미꾸지’이다. □ 안의 시설물은 미호대교의 주탑이다.

 

지명을 부여할 때 고려하는 원칙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자연지리적인 측면에서의 명명과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의 명명이 그것이다. 후자는 사회구성원이 지향하는 이념을 담아 그들이 소망하는 명칭을 담아내는 것이고, 전자는 지형을 비롯한 지리적 실체가 지닌 특징을 명명의 배경으로 삼는 것이다. ‘어진 사람을 양성함’이라는 소망을 담아 생성된 ‘養仁’은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생겨난 지명이며, 산줄기가 물을 향해 뻗어 내린 지형의 특징을 바탕으로 생성된 ‘미꾸지’는 자연지리적 측면에서 생겨난 명칭이다.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명명된 지명은 일반적으로 한자를 활용하므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어휘가 동원된다. ‘養仁’도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미꾸지’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순우리말로 구성되었다. 동일 지점이 ‘미꾸지’와 ‘養仁(洞)’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는데 ‘養仁(洞)’은 공적 지명으로 채택되어 일찍이 문자화되어 활용되었고 ‘미꾸지’는 속지명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구어로 전승되다가 뒤늦게 ‘彌串(미곶)’으로 문자화되었다.

‘彌串’을 거쳐 ‘美湖(미호)’로 정착된 원초형 ‘미꾸지’는 지형의 특징이 반영되어 생겨난 명칭임을 <사진1>을 통하여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사진1>은 네이버 지도와 조선총독부 3차 지형도 조치원 도엽 중 ‘미꾸지’ 일원의 지형도이다.

<사진1>로 지도화된 공간이 명명 당시의 지형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교량, 도로, 제방 등 인공물을 제외한 자연지형은 원형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산은 ‘미꾸지’라는 지명이 생겨난 시기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천의 경우 제방 공사로 인하여 미호강과 두 지류가 합류하여 강으로 유입되는 지점은 상당한 변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과 ㉡의 비교를 바탕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제방 공사로 인하여 부분적인 지형의 변화가 있었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차원에서 행해진 것이므로 전체적으로는 그 원형이 크게 손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에서 보듯 ‘미꾸지’는 동북쪽에서 내려오는 태성천과 서남쪽에서 내려오는 노송천이 합류한 지점에 위치한다. 두 하천은 합류하여 미호강으로 유입됨은 물론 두 내 사이에 우뚝 솟은 아미산 줄기는 미호강을 향하여 돌진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사진만으로도 산이 꼬챙이가 되어 물을 찌르는 형상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예양리 강촌에서 촬영한 <사진2>를 보면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에 읍치가 자리했던 연기리에서 볼 때 동북쪽 너른 들판의 끝자락에서 아미산(139.7m) 줄기가 미호강을 향하여 뻗어 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미산의 산줄기는 뒤쪽에 위치한 은적산(205.7m)과 망덕산(175.7m)에서 이어진 것이므로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 산줄기가 강을 향하여 내리뻗은 것이다.

‘미꾸지’의 ‘미’는 [山]을 뜻하는 고유어 ‘뫼’의 변화형으로 볼 수도 있고 [水]를 의미하는 고구려어의 잔영으로 볼 수도 있다. [山]을 뜻하는 것으로 볼 때 [山串]이고, 물을 뜻하는 것으로 볼 때 [水串]인데 미호강의 물을 꿰뚫고 들어가는 주체는 [山]이지 [水]일 수는 없다.

육지가 물을 향해 꿰뚫고 들어간 경우 문자 ‘串’을, 산이 들판을 향해 꿰뚫고 들어간 경우 ‘岬(갑)’을 활용하여 구분한 사례는 있으나 물이 물을 꿰뚫고 들어간 지형을 표현한 예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은 큰 줄기가 작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이를 꼬챙이에 비유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요컨대 ‘미꾸지’는 ‘미[山]+곶[串]’이 바탕이 되어 명명된 것으로 ‘곶’에 ‘-이’가 첨가된 후 강음화와 발음 경제를 위한 음운 변화가 수반되어 ‘미꾸지’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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