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공예인 뜨거운 손길을 찾아서- 김성호 칠장(漆匠)]

3년여에 걸쳐 복원, 제작한 ‘건칠 반가사유상’이 대표작
“전통기법 건칠,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형태제작부터 완성까지 오직 내몫”
이성운 선생의 전통기법 계승, 백태원 교수의 예술적 창조성 조화 이뤄 나전칠기 현대화기여

‘건칠 반가사유상’45X55X90cm, 모시, 토분. 옻칠.
일반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옻칠 수저세트.
한국공예관 공예스튜디오 김성호 칠장의 작업실.
나전칠기 가구.
‘목련문양상자’.
‘목련문양상자’ 부분.
‘사주함’
바루를 손질하는 김성호 충북도무형문화재 27호 칠장.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옻칠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장인을 칠장(漆匠)이라 하는데, 칠만 잘하면 되는 것인가 했으나 실제 그 세계로 들어가 보면 왜 명맥이 끊기는지 이해될 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공정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김성호(66) 충북도무형문화재 27호 칠장 기능보유자는 옻나무에서 채취한 생 옻을 조제 해 기물에 칠하는 장인이다. 조제된 생 옻은 소지에 초벌 한 후 쓰임에 따라 초칠, 중칠, 상칠 후 광내기와 다시 거듭된 옻칠을 통해 기물을 완성한다.

칠장이 주로 작업하는 나전칠기는 자개와 옻칠로 만든 장, 농, 옷걸이, 문갑, 함, 합, 장신구 등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가구및 기물이다. 전복이나 고동, 조개껍질 등을 가공해 그 껍질을 연마하면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을 지닌 ‘자개’를 얻을 수 있다. 그 문양에 맞게 자르거나 썰어서 원하는 기물, 즉 상이나 농, 장 등에 붙여 다시 수차례의 옻칠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이 과정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부 제작과정이 들어간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나전칠기는 옛사람도 궁중이나 벼슬한 부잣집이 아니면 일반 백성들은 구경하기 어려운 귀한 물건이었다.

하나의 나전칠기 작품이 완성되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콜라보를 이뤄야 하는 경우도 많다. 우선 용도에 맞게 장이나 농을 짜는 소목장이 있어야 하고 자개를 가공 및 문양을 작업하는 나전부, 문짝이나 서랍에 필요한 장석, 경첩을 만드는 장석장, 마지막으로 칠하는 칠장이 마무리한다. 이중 김 칠장은 패 세공기능과 옻칠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김 칠장은 전통적인 칠 기법을 통해 보존성과 미감을 높이는데 주력하는데, 맥이 끊어진 전통기법인 건칠(乾漆)을 복원하는데 특히 노력하고 있다.

김 칠장이 3년여에 걸쳐 복원, 제작한 ‘건칠 반가사유상’이 그의 대표작이다. 이 건칠 불상은 흙으로 본체를 조각한 후 그 흙 위에 모시와 옻칠로 10회 이상 반복적으로 배접해 두께를 얻은 다음 흙으로 된 본체를 빼내는 탈퇴기법으로 제작된 불상이다. 표면의 두께를 얻기 위해서는 모시와 옻칠 골회로 살을 올린 다음 다시 성형을 반복해 제작하는 것이다. 옻칠과 건조와 다시 연마, 기물 후 다시 배첩, 사포질, 연마 다시 옻칠 등 수십 번의 공정을 거친 다음 금분과 채색으로 마무리한다.

"나전칠기는 소목장이 짜준 틀에 작업을 하지만 건칠의 경우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형태제작부터 완성까지 오직 저의 손에 의해 이뤄집니다. 나전칠기는 여러 공예인이 혼연일체가 되어 작품이 완성되는 좋은 점이 있지만, 건칠 작업은 오롯이 ‘내 몫’이라는 점에서 어렵고 고단하지만 더 매력을 느낍니다."

김성호 칠장이 이 고단한 장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삼촌이 나전칠기를 하신 것이 계기가 됐다. 집안이 가난해 학교에 갈 형편이 안되 삼촌 밑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열여섯살이다. 6년여 동안 문씨공방에서 기능공으로 옻칠 도자의 기초기술을 연마했다. 그러다 1980년 7월부터 12년간 이성운 장인 나전칠기 공방에서 옻칠도장과 나전문양, 건칠작업 등을 익혔다. 건칠 작업에 빠진 것도 이성운 스승의 영향이 컸다.

이후 중앙대학교 백태원 교수 밑으로 들어가 디자인 개발과 건칠 작업을 발전시켰으며 1995년에야 해봉공방을 자영하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나전칠기 공예에 천착해 왔다.

독립했지만 스승들의 영향은 작업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성운 선생의 전통기법을 계승하고 백태원 교수의 예술적 창조성을 수용해 나전칠기의 현대화를 이루기도 했다. 가구는 물론 장신구류, 조형물, 관광상품 등 다양하게 개발해 전통 칠기의 세계화를 이루기도 했다.

"전통기법을 전승하되 현대에 맞게 합리적으로 개선할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자개 긁기, 상칠, 상도 후 공정을 개선하기 위해 공구와 약품, 공법을 개발했습니다. 이로 인해 작업시간 단축과 제품 하자율 감소로 품질을 높이고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을 도모하기도 했습니다."

초기에는 대규모 사찰의 옻칠 작업으로 옻칠 문화의 저변확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천태종 총본산인 충북 제천 구인사 조사전 건물 내외 및 수미단, 좌대, 마루 등의 옻칠 공사와 경기도 시흥시 영각사 건물 내외, 목탱화 불상 등 전국 사찰의 옻칠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대 가구에 밀려 나전칠기 가구 제작은 전시용이 아니면 주문제작은 흔치 않다. 하지만 혼례 때 사용하는 사주함이나 의류를 보관하는 관복함, 스님들의 바루 세트는 종종 주문제작이 들어온다. 사주함과 관복은 홍송으로, 바루는 물푸레나무로 만드는데, 이 경우는 목공 일도 직접 해 작업에 들어간다.

김 칠장의 작업실 한국공예관 스튜디오에 전시된 작품 관복함 ‘목련문양상자’는 홍송백골에 삼베를 배접, 옻골회로 삼베 눈메 메우기, 수차례의 옻칠을 거쳐 건조한다. 문양은 백목련이 탐스럽게 피는 과정을 돋 보이게 하기 위해 줄기와 바탕은 붉은 칠과 초록칠, 검은칠 등으로 효과를 냈다. 새가 앉은 목련 줄기가 입체적이어서 봄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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