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철 서원대 명예교수(한국지명학회·국어사학회 고문) ‘미호강’ 명칭 관련 특별기고(2)

지도는 지형을 완벽하게 그려내지 못한다
반영된 지명만큼 누락된 지명도 고려해야
동진 인근 교량 ‘동진대교’ 아닌 ‘보롬교’

박병철 서원대명예교수(한국지명학회, 국어사학회 고문).
1872년 지방도, ㉠ 청주목 지도
1872년 지방도, ㉡ 연기현 지도

목 차

1. 합리적인 지명 연구를 위한 전제(1): 언어와 문자

2. 합리적인 지명 연구를 위한 전제(2): 지형과 지도

3. ‘미호’의 원초형 ‘미꾸지’ 명명의 배경

4. ‘미호’의 원초형 ‘미꾸지’의 생명력

5. ‘미꾸지’의 후부요소 ‘꾸지(←구지←곶)’의 한자표기: ‘串’에서 ‘湖’로

6. ‘미꾸지’의 전부요소 ‘미’의 한자표기: ‘彌’에서 ‘美’로

7. ‘미곶’의 부상과 ‘동진’의 쇠퇴

8. 미호강 명칭 ‘미호’는 일제 잔재일 수 없다.

 
 
 

문자가 언어를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하듯 지도 또한 지형을 완벽하게 그려내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사전에서 지도를 "지구 표면의 일부나 전부를 기호나 문자를 사용하여 실제보다 축소해서 평면상에 나타낸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지도라 하더라도 축척, 제작 주체, 활용 목적…… 등에 따라 지표상에 존재하는 사실을 반영하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하면서 그려내는 것이다. 또한 동일 지역을 묘사한 지도라 하더라도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여 제작되기 마련이다. 특히 산과 강 같은 자연지리적 실체와는 달리 나루터나 역원 같은 인문지리적 실체는 시대별 중요도에 따라 그 반영을 달리하게 된다.

같은 시기에 유사한 목적으로 제작된 지도라도 지리적 실체인 지형을 동일하게 그려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1872년 지방도’(사진)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 지도는 각 지역의 실정 파악을 위해 1871년 전국적인 읍지 편찬과 함께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군현도이다. ㉠과 ㉡은 각각 청주목과 연기현의 지도 중 ‘미꾸지’ 일원을 가져온 것인데 ㉠에는 하천명이 하나도 기재되어 있지 않은 반면에 ㉡에는 ‘東津江(동진강)’과 ‘美串津(미곶진)’이 올라 있다. 그러므로 지명을 연구함에 있어 지도에 반영된 지명에만 집착해서는 안 되며 상황에 따라 누락된 지명도 동등하게 취급하여야 한다.

금강 제1지류 미호강의 몇몇 지점 또는 구간에 제시된 명칭 또한 제작 시기별 중요도, 제작자의 의도 등에 따라 명칭의 출입이 있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이른 시기의 지도에 반영되었던 명칭이 후대의 자료에서는 삭제되기도 하고, 지리적 실체는 있었으되 반영되지 않았던 명칭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듯이 생성, 발전, 소멸의 과정이 지명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지리적 실체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등재될 수 있으며 반면에 현재 지도에 올라 있는 명칭이 그 대상물의 쇠퇴와 함께 지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논란의 중심에 있는 ‘동진’과 ‘미호’도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른 시기의 지리지나 지도에는 연기현의 랜드마크와 같이 중요시되어 기재되었던 명칭이 ‘東津(동진)’이다. 하지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1861)와 ‘동여도’가 제작되었던 시기를 전후하여 ‘彌串(미곶)’ 또는 ‘美串(미곶)’이 등장하면서 ‘東津(동진)’은 쇠퇴의 길에 들어서고 ‘미곶’의 발전된 형태 ‘美湖(미호)’가 대단한 확장성을 보여주면서 사회성을 확보하였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동진’ 인근에 놓인 교량명조차도 ‘동진대교’가 아닌 ‘보롬교’이며, 도로명 또한 ‘동진대로’가 아닌 ‘한누리대로’이다.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사회적 합의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언어란 사회구성원이 상호 작용하고 협동하는 도구이다. 때문에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한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종대왕의 동국정운식 한자음 제정과 관련하여 경험한 바 있다. 입법·사법·행정 삼권을 한 손에 쥐고 백성들의 신망도 높았던 절대 군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다. 특히 지명어는 매우 보수적인 속성을 지니므로 한번 굳어지면 쉽게 바꿀 수 없는 특성을 지닌다. 더구나 지형과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는 지명은 더욱 그렇다는 사실을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밝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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