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로 우표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40년 5월6일 영국의 로랜드힐에 의해 발행돼 사용됐던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884년 11월18일 서울 인천간에서 근대우편업무가 시작되면서 문위우표가 사용됐다. 5문, 10문, 25문, 50문, 100문 5종으로 일본 정부(일본대장성인쇄국)에 의뢰, 제작해 우정총국 개시와 함께 판매할 예정이었으나 우정총국 개시일까지 5문과 10문만 도착하고 나머지 25문, 50문, 100문은 도착되지 않았다. 문위우표 5문과 10문은 최초로 우정업무가 개시된 서울(한성)과 인천(제물포) 사이에 오고 간 우편물에 사용됐을 뿐 나머지 25문과 50문, 100문은 우정총국 개국일까지 도착되지 않음으로써 미 발행에 그치고 말았고, 1884년 12월6일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의 실패로 신식우편제도가 폐지되고 말았으나 미완의 제도시행이었지만 우리의 우표발행 역사가 122년이나 된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우편업무의 개시와 더불어 발행되기 시작한 우표는 단순하게 우편물을 배달하는 가격표시라는 기본적인 증지개념 이외에 국가의 역사, 문화, 예술, 과학, 문학 등을 집약적으로 나타내 주는 고도의 종합예술의 결정판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우표를 수집하고 우취자료를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 나가는 사이에 우표에 대한 지식은 물론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예술 등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됨은 물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정서적으로 매우 유익하며, 단순 취미로 수집한 우취물이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고가에 거래됨으로서 재산증식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우표수집은 많은 이들의 취미 1호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1856년 영국령 가이아나에서 발행된 1페니짜리 우표 1장이 30억원에, 모리셔츠에서 프랑스 보르도로 체송된 실체봉피 1점이 1993년 쮜리히 옥션에서 32억원에 낙찰됐다는 것을 보면 우표수집도 큰 돈이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표는 소수의 수집인들에게만 관심의 대상이 될 뿐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증지개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칠때도 조금 빠르게, 조금 편하게, 인건비 절약 등의 명목으로 우표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별납이나 후납으로 발송하거나 인쇄된 스티커를 붙임으로서 우표의 사용 자체가 필요하지 않게 됐고, 그러다 보니 우표수집을 하는 우취인들도 제대로 된 우표와 소인을 보기 어렵게 돼 사용제 봉투를 수집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렵게 됐다. 결국 이러한 우표정책은 앞으로 이 땅에서 우표수집을 취미로 여기는 사람들의 수를 급격하게 감소시킴은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 조차 우표수집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못해 향후 정보통신부의 조급증 정책들이 우리 우표문화를 황폐화시키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이러한 때 서청주우체국에서 5월23일부터 26일까지 서청주우체국 개국 1주년과 청주우표회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서청주우표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청주우표회 회원 작품 약 80틀의 우취작품과 솟대, 사진, 생활다기, 서화가 전시되고 입구에서는 가훈 써주기 행사도 같이 진행되어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전문가들의 작품으로 가훈을 소장할 기회도 주어지고 있다. 이러한 계기를 바탕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우표수집의 취미생활을 일깨워 주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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