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영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사서

[충청매일] ‘시간은 참 빨라 어제와 오늘의 유행도 달라♪ 시간이라는 화살은 얼마나 더 멀리 날아갈까♪’ 내가 즐겨 듣는 ‘3호선 매봉역’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2023년이 시작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두 장의 달력을 넘겼고, 나의 직장생활도 어느새 5년차가 되었다. 나는 이렇게 매일같이 출근할 직장인이 될 수 있었던 건 5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타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수험 생활을 위해 본가로 내려와 지낼 때, 가장 불편한 것은 출근하시는 부모님 대신 할머니 식사를 챙겨드리는 일이었다.

나의 일상은 할머니와 나의 배꼽시계에 맞춰 돌아가고 도서관과 집을 쳇바퀴 돌 듯 돌면서 그때의 나는 할머니 점심을 챙겨드리는 게 너무 성가시다고 생각한 어린 애였다.

그러는 6개월 후 그날은 시간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데, 그날따라 할머니의 얼굴이 노랗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나서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할머니의 입원이 이어졌고, 갖가지 검사들 속에서 할머니의 얼굴은 점점 더 샛노랗게 변해갔다. 모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백수인 내가 할머니 곁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 주 주말에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앞둔 나는 내내 불안한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당신을 위해서였을까? 남겨진 우리를 위해서였을까? 할머니는 결국 인사도 없이 떠나셨다. 상중 내내 나는 ‘더 맛있는 점심 차려드릴걸’, ‘귀찮다고 생각하지 말았어야했는데...’ 하는 마음에 참 많이 울기도, 후회도 했다. 할머니를 보내드린 그 주에 치룬 시험에서 나는 합격증을 받으며 나는‘이 합격은 할머니가 내게 남겨주신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지만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죽은 사람이 살던 방, 집을 청소하는 회사 이야기를 다룬다. 넷플릭스 ‘무브 투 헤븐: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남들 눈엔 지워야 하는 흔적이더라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삶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수청소회사 데드모닝의 사장인 사사가와도 딸이 태어나자마자 3개월이 조금 지났을 즈음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회사 대표를 맡기 전, 응급구조사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그는 소중한 딸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에 일도 그만두고 가정도 잃는다.

그렇게 사사가와의 태양이 죽고 아침이 찾아오지 않는 생활을 계속하다가 한 술집에서 청년 아사이를 만나게 되고, 사사가와는 아사이에게 단순 파트타임으로 유품 정리를 부탁하게 된다. 현장에서 오줌도 지리고, 구토도 하곤 했던 아사이는 사장을 대신하여 현장도 맡게 될 만큼 성장한다.

하지만 둘은 어린 모녀의 동반자살 현장 청소 의뢰를 두고 심하게 다투었고, 아사이는 그만의 방식을 통하여 사사가와가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사람이 잠에 드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끔은 잠들기 전 ‘죽는다는 건 뭘까?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하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죽은 사람은 성장할 일도 없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일도 없어. 정지된 상태야. …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과거뿐이야."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떠난 이를 오래오래 보내지 못하는 것도 그 사람이 이승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붙잡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니 말이다.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살아가야만, 행복해야만 한다. 그게 그들이 바라는 일일 것이다.

죽은 자의 흔적을 지우는 특수청소란 죽은 인간이 남긴 온갖 오물과 냄새를 기술적으로 소멸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 땅에 존재했던 누군가를 기억하고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내면적인 작업이다.

이 책은 매일 고인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소설속의 주인공들을 통해 죽음보다는 생명, 끝이 곧 시작임을 알리는 삶의 이야기로 읽힌다.

또 간호사였던 작가의 사실적인 현장 묘사와 우리 주변의 있을 법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감동을 더하고 있다.

요즘 같은 불안의 시대에 의미 없이 부유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잊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메일 확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에 최소 한 통 이상은 받아보는 경조사와 관련한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 심정을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겠지만 사사가와처럼 어두운 밤에만 숨어 슬픔을 감싸 안지 말고, 하루빨리 또 다른 태양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날이지 않은가? 퇴근길에는 소중한 사람에게 안부 전화 한 통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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