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초기에 영의정은 모든 국사를 총괄해 권한이 대단했다. 삼공(三公=영의정·좌의정·우의정)은 일국의 크고 작은 일에 참여해 결정하지 않는 것이 없기에 권한이 높고 국체(國體)가 중했다.

그러나 세조가 정난(靖難=쿠데타)으로 왕통을 이으면서부터 그 제도를 파하여 이때부터 삼공의 권한이 땅에 떨어지고 국체 또한 점점 풀어졌다.

 ‘식소록(識小錄)’ 정난을 하면서 독재의 필요성이 생기고, 독재를 하려다 보면 상대적으로 수상의 권한은 줄어든다. 그 이후부터 수상이라는 것은 사형수나 결정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고하니 한심한 벼슬이긴 했다.

수상무력(無力)의 전통은 이처럼 유구했다. 앞서 수상의 조건으로 미뤄 봐도 민권과 수상의 권한은 비례함을 알 수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새 총리 후보로 환경부장관을 지낸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을 지명했다.

김대중 정부말기에 아들 국적과 학력 시비 등으로 낙마한 장상씨에 이어 두번째 여성 총리 지명이다.

한 의원이 국회인준을 받게 될 경우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한 의원은 2차례 장관을 지냈고 시민사회단체의 평판이 괜찮다.

환경부장관 시절 부처평가에서도 수위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큰 현안을 해결하는 추진력과 장악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여하튼 여성의 사회참여 여건이 열악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감안하면 매우 고무적이고 바랑직한 일이다.

유엔 가입국의 여성장관 평균비율은 10%, 북유럽국가들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노르웨이에 이어 칠레에서는 ‘남여동수내각’이 출범했다.

참여정부 취임 초기에는 여성장관이 4명이었지만 현재는 장하진 여성가족부장관뿐이다. 여성총리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은 ‘철(鐵)의 여인’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다.

11년간 집권한 그는 280년간 배출된 55명의 총리 가운데 유일하게 ‘대처리즘’ 이라는 주의(ism)가 붙여진 총리다.

최근에는 독일판 ‘철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 성공한 여성 총리는 남성보다 더 냉정하고 강한 리더십으로서 정치적 입지를 마련했다.

나아가 남성 중심의 정치적 관행과 문화도 바꿨다. 그런 점에서 여성이라는 이미지보다 여성 총리가 어떤 권한과 책임을 갖고 국정을 이끌어가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여권이 신장된 국가에서도 여성에게 현실정치 벽은 크다. 정치세계 자체가 남성 중심의 논리로 지배돼온 탓에 여성이 기성정치의 틀을 바꾸려면 그야말로 걸출한 능력과 리더십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아직 여성대통령과 총리가 나오질 않고 있다. 한 의원 총리 지명을 놓고 열린우리당과 여성단체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는 내각의 정치적 중립 훼손을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도 정치적 중립을 전제로 여성 총리를 환영한다는 의견을 냈던 것을 감안하면 국회 인준에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지명자는 ‘첫 여성 총리’라는 상징적 의미보다 중요한 것은 국정수행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적 여성 총리’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목전의 지방선거를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다. 여당의 당적을 가진 여성 총리가 여야의 정쟁에 휘말릴 경우 여성 총리의 존재 이유는 훼손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여성 총리에게 책임과 권한이 있는 ‘책임총리’제를 시행할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리고 한 지명자는 정책비전과 내각통솔 방안, 정치적 과제에 대한 특단의 구상과 의지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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