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만화’ 기상 상태에 어려움 겪어
여성산악인 고 지현옥씨 추모제도

   
 
  ▲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천200m 지점에서 고 지현옥씨를 추모하며 제를 올리고 있다.  
 

패랭이꽃이 끊임없이 시선을 유혹하는 숲을 지나자 히말라야 호텔(2천870m)이 나타났다.

이곳 또한 게스트 하우스로 주위가 절벽과 숲으로 둘러 싸여지고 계곡의 힘찬 물줄기가 내려가는 고즈녘한 곳이다. 새벽에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간의 힘든 일정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히말라야의 산신들은 내개 밤하늘의 속살을 보여 줬다.

양쪽 산맥의 검은 실루엣으로 절반을 가득 메운 밤하늘의 위쪽에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다이아몬드가 짙은 코발트색 밤하늘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마치 창고에 가득 쌓아둔 보석 가마니들이 까만 카펫위에 한꺼번에 쏟아져 흩어진 형국이었다.

크고 작은 별들이 하나하나 그 빛들을 쭉쭉 뻗어내고 있는 가운데 손 뻗으면 닿을 듯한  밤하늘에는 북두칠성이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12일 햇살이 들지 않아 기온이 매우 차게 느껴졌다. 이제 경사가 점점 더 심해진다. 3천m를 넘어서니 대원들의 발걸음이 무뎌지고 바위벽을 흐르던 물줄기는 빙폭으로 변해버렸다. 

눈 앞에 안나푸르나Ⅰ봉이 고개를 내밀었다. 오른쪽 거대한 절벽사이로 마차푸차레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양쪽의 거대한 바위벽을 뚫고 햇살이 비추자 우리는 추위에 떨던 어린 양들처럼 일광욕을 즐겼다.

태우와 박종화 선생이 두통을 호소했다. 비아그라(혈관확장제-고소에서는 산소 부족으로 고소증세가 발생하는데 이때 혈관확장제 처방이 고소치료제로 적당) 처방을 하고 천천히 걸으라 당부했다.

안나의 성역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비수기라 3개의 롯지 중 2개만 개방한 데우랄리를 통과해 주위의 거대한 벽사이로 비치는 앞의 설산을 바라보며 위대한 자연 앞에서 겸손의 발자욱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3천700m)의 마지막 오름길인 헐떡고개가 우리의 숨소리로 채워질 즈음 조금 전 숨어 버렸던 마차푸차레와 안나산군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졌다.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내일의 ABC까지의 산행을 위해 이곳 MBC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마차푸차레의 정상부에 거대한 눈바람이 기둥을 만들어 하늘로 솟구쳤다. 안개는 주위를 휘감아 서로를 감추더니 잠시후 쾌청함을 반복했다.

천변만화(千變萬化)의 기상변화다. 기온도 상당히 낮아졌다. 저녁시간 우리는 모두 모여 촘롱에서 학생들과 함께할 프로그램에 대해 상의했다. 태권도, 종이접기, 꼬리잡기, 돼지씨름, 닭싸움 등의 프로그램을 하기로 했다. 내일의 쾌청함을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13일 이른 새벽 단잠에서 일어나 안나 여신의 품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대원들의 컨디션은 모두 양호했다. 어둠이 가실 때쯤 안나의 품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그녀는 서서히 실오라기를 벗어 던지며 탐사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완전히 걷히고 햇살이 온 산을 밝힐 때 힘들게 이어지던 숨소리를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다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기 안나푸르나Ⅰ봉(8천091m)이 눈앞에 확연히 들어온 것이다. 모두들 힘이 솟는 듯 했다.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천200m)에 모여 사방을 둘러봤다. 히운추리(6천441m) 안나푸르나 남봉(7천219m), 안나푸르나 주봉(8천091m), 강가푸르나(7천483m) 안나푸르나Ⅲ(7천855m), 마차푸차레(6천995m) 빙설의 병풍이 너무도 장관이라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병풍처럼 펼쳐진 안나 산군을 바라보며 탄성과 함께 기쁨의 환희를 맛보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영원히 잠을 이룬 고(故) 지현옥 선배에 대한 제를 올렸다.

1999년 4월29일 그녀가 그렇게 바라던 히말라야에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한 그 자리. 저 곳 빙하 어느 곳에서 편히 누워 있을지 모를 일이다. 세계 최고의 여성 산악임이면서도 결코 게으르고 자만하지 않았던 현옥이형 영전에 잔을 올린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