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한 논 건너 방죽이었다.

명암방죽, 새뜸방죽, 숙골방죽, 원흥이방죽….

오죽하면 동네이름도 방죽말일까.

방송국 앞 동네 이름이 방죽말이다.

지금도 이 동네 방죽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버티고 앉아 오가는 길손을 맞는다.

수곡동 숙골방죽은 토종붕어도 많았지만 마름이 지천이었다. 가을철 검은 별 모양의 마름열매를 따다 쪄내면 별사탕 과자처럼 고소하고 달았다.

숙골방죽 원주민들은 그 추억을 잊지 못해 해마다 여름이면 옛 마을 어귀에 모여 체육대회를 연다.

숙골이 수곡동이 되고 쇠내 개울이 금천동이 되고 용바윗골이 용암동으로 변하는 사이 참으로 많은 방죽들도 그간 유명을 달리했다.

도시의 팽창과 난개발에 밀려 자취도 없이 사라지거나  시멘트 숲 속에 갇혀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이다.

명암지! 그 속에 명암지가 있다.
명암지는 여전히 청주의 상징이다.

요즘은 명암호수라고도 부르지만 우리는 모두 명암 방죽이라고 했다.

호숫가 능수버들 그늘에는 강태공들이 사철 붐비고 춘정(春情)에 젖은 연인들이 거울 같은 수면위로 노를 젓던 첫사랑 언덕의 호수.

명암 약수터가 단골 소풍코스였던 시절 굽이굽이 언덕길 지나 반나절을 가면 고개 날망 위로 둑이 보이고 그 위로 머리에 물을 이고 있듯 유리 같은 명암지가 나타났다.

“아 이제 곧 명암 약수터로구나” 하며 거친 숨을 내쉬고 쉬어 가던 곳.

명암지는 그런 곳이었다.

우암산, 것대산, 낙가산 옥계수가 모여들던 곳,

산그늘 산 속에 내려앉은 호젓한 산 속의 작은 녹색바다.

그러나 지금 명암지는 없다.

호수는 사라지고 대신 자본의 천박한 색조 화장 같은, 시멘트에 갇혀버린 거대한 물웅덩이만 남았다.

천년산성의 그 이끼 낀 돌을 타고 흐르던 옥계수는 우회도로에 막히고 뒤틀린 물길에 휩쓸려 호수에 제대로 닿지 못한다. 옛 야외수영장에서 샘솟던 용천수도 도로공사 도중 막혀버려 사라졌다.

제대로 들고나지 못하는 물은 이내 자정능력을 잃고 썩기 마련이다.

동부우회도로의 금이 그어지면서 신비의 산 기운도 그때 사라졌다.

산 기운에 실린 그 아름답던 호수풍경도 상전벽해의 모습과 다름 아니다.

무를 깎아 먹다 버린 듯 한 위태한 가분수 건물이 꽂여 있고 지금도 주변으로 쉼 없이 산세와 물길과 무관한 시멘트 구조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생각해보라.
구릉과 구릉으로 이어지는 더없이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위로 그 녹색위로 수면위로 지금의 그 구조물들이 과연 제 몫으로 안착하고 있는 것인지.

2000년부터 청주시가 수십 억의 예산을 쏟아 부으며 3만5794㎡에 조성한다던 그 시민 쉼터 조성사업은 과연 시민휴식공간으로써 우리들 정서에 안겨 있는 것인지…. 소위 말하는 개발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도시산업화와 팽창에 밀려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청정호수들을, 정겨운 방죽들을 공물로 바쳐야할까.

명암방죽 원흥이방죽…, 그리고 그 다음은 또 어느 곳이 될까?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좋다.
명암방죽은 그대로 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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