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청주시 경덕초 교감

이태원 참사는 침몰해 있던 기억과 공포를 인양했다. 벚꽃 날리는 4월에 한겨울 얼음바다 속에 있는 듯 오한이 들고,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죄인처럼 숨이 막히던 길고 무력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일상의 믿음은 깨지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공격으로 날카롭게 날이 서 있던 시절이 상기되었다. 두 참사는 마치 같은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10월 30일 월요일. 교내 학생자치회에서 준비한 핼로윈 행사는 취소되었다. 올해 핼로윈은 자치회에서 처음 운영하는 것으로 등굣길에 학생들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나눠주겠다고 공지가 되었다. 우리 명절이나 공식 문화도 아닌 핼로윈 행사를 학원도 아닌 학교에서 한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면과 의상도 없는 활기와 관계 중심의 약식 행사라 해도 학생들이 상술과 재미에 철없이 휘둘리는 것 같아 혼자서 못마땅했다. 자치 활동을 평소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던 것과 달리 핼로윈 만큼은 새로운 시도보다는 가만히 있기를, 발랄함보다는 얌전함을, 흥겨움보다는 교육적인 것을 앞세웠다.

함께 애도하며 행사는 바로 취소했지만, 나는 이 참사로 인해 학생들이 내년에 핼로윈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할까 봐 혼자 걱정을 했다. 자율 행사는 위험하고, 사고와 재난은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라고 배웠을까 염려했다. 도전보다 관례를 따르는 것이 현명하고, 내 발로 내가 한 일은 다 내 책임이니 섣불리 일 벌이지도, 여럿이 같이 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다짐할까봐 눈치를 봤다. 어린이도 아닌 성인들이 거짓말처럼 쓰러져 있던 장면이 애도보다는 불운으로 읽히고, 더불어 즐기는 축제보다 각자도생의 방에서 핸드폰이나 하는 게 낫다고 결론 내릴까 봐 나는 혼자 소심해졌다.

그러나 나의 무거운 노파심은 이태원 참사 생존자가 쓴 상담과 치유의 글을 읽으며 다소 가벼워졌다. 그는 자책과 후회에서 벗어나 본질을 직시하고 미래에 대해 기록했다. 핼로윈 축제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가족과 같이 가고, 다른 사람과도 친구가 되는 축제가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다. 자신을 향해 쏘았던 활을 내리고 국화꽃 놓으러 이태원에 갈 거라고 했고, 내년에도 핼러윈 분장 멋지게 하고 이태원에 갈 것이라 밝혔다. 청년의 건강한 회복에 용기를 얻은 나는 복도에 지나가는 자치회 학생에게 접근해 물었다. “내년에는 핼로윈을 어떻게....”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야죠. 올해 못한 만큼 더 재미있게 할거에요.”애도도 하고, 축제도 하겠다는 학생들의 발랄함이 눈부셨다. 

11월 2일 수요일에는 강당에서 3년 만에 대면 심폐소생술교육을 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하던 현장을 TV로 본 후의 교육이라 그런지 직원들의 참여와 태도는 매우 진지했다. 내 생명과 안전이 오롯이 나만의 책임이라면 나는 타인의 심장을 압박할 이유도 없고, CPR 교육을 의무화할 필요는 더욱 없다. 뜻밖에 무참히 쓰러져도 어떤 손이 나를 깨우고, 지역이, 국가가 나를 살릴 것이라고 안심을 하니 기대에 부풀어 축제에 갔고, 그 믿음과 신뢰를 지키는 것이 공동체의 책임일 것이다. 장례를 마친 후에야 가족을 잃은 상실이 밀려오고 긴 애도가 시작되듯이 이태원 참사 관련자들의 상실과 애도에는 유효기간이 없을 것이다. 애도 기간을 보내고 나는 다시 가볍고 명랑하게 지내겠지만 이 일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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