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505년 춘추시대, 초나라는 대대로 남방의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소왕(昭王) 무렵에 낭와(囊瓦)를 영윤에 임명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작은 제후국인 채나라는 오래도록 초나라와 우호 관계였다. 하루는 채나라 소후가 초나라를 방문하여 귀한 보물을 소왕에게 바쳤다. 그런데 낭와가 소후를 따로 불러 말했다.

“소왕에게 바친 보물을 내게도 주시오. 나는 초나라의 영윤이오!”

이에 소후가 대답했다.

“초나라 대왕에게 보물을 바치는 것만으로도 우리 채나라는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그러니 영윤께는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자 낭와가 앙심을 품고 소후를 억류하였다. 채나라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소후가 돌아오지 않자 신하들이 나섰다. 어쩔 수 없이 똑같은 보물을 구해 낭와에게 바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소후는 귀국하면서 이렇게 맹세했다.

“다시는 초나라를 찾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오나라 편에 설 것이다!”

하루는 낭와가 신하 투저를 만나 물었다. 그 무렵 투저는 가문의 수장이 되어 가장 재산이 많은 신하였다.

“어떻게 해야 재물을 모으는지 내게도 좀 알려주시오.”

투저가 정중하게 대답하였다.

“저는 재산을 모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가문의 재산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낭와가 이어 말했다.

“돈 버는 재주는 아무에게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대가 바로 그렇군요. 다음에 우리 집에 초대할 테니 그때 내게만 슬쩍 알려주시오.”

투저가 집에 돌아와 문중 사람들에게 한탄하며 말했다.

“영윤이라는 자가 공을 세울 생각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하니 초나라의 앞일이 걱정이다. 낭와가 내게 어떻게 재물을 모았는지 물었는데 마치 굶주린 이리 같았다. 그가 가진 수많은 재물은 나라 곳간에서 빼돌린 것이 아니면 도대체 어디서 얻었단 말이냐!”

어느 날 오나라 군대가 쳐들어왔다. 이때 채나라가 오나라와 연합해 공격에 가세했다. 초나라는 맞서 싸웠으나 모두 패하고 말았다. 오나라 연합군은 기세를 몰아 초나라 도읍을 공격했다. 그러자 소왕은 죽을까 두려워 병사들 몰래 궁궐을 빠져나갔다. 낭와가 그 뒤를 따라가려다 신하 사황에게 붙잡혔다.

“편안한 시절에는 재물에만 신경 쓰다가 막상 전쟁이 나니 도망하려 하십니까? 초나라를 구하려면 목숨을 걸고 싸워도 부족한 판인데 영윤이 되어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하지만 낭와는 끝내 교묘히 빠져나가 정나라로 달아났다. 사황을 비롯한 마지막까지 궁궐을 지킨 신하들과 병사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숨졌다.

척공비사(瘠公肥私)란 나라의 재물을 빼돌려 자신의 영리를 살찌운다는 뜻이다. 잘 나가던 나라가 갑자기 어려워졌다면 그건 분명 나라 안에 도적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서둘러 도적을 몰아내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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