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초록이 눈에 어리어리하다. 지금도 여전히 난 녀석을 찾아 잔디밭을 헤맨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이파리들 중에서 골라내려니 그놈이 그놈 같아 엉뚱하게 잔디를 들썩일 때도 있다. 갈고리처럼 생긴 호미를 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한 줌이나 수확하는 쾌거를 맛보았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 되었고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이사 후 첫봄을 맞은 나는 초봄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자마자 미리부터 잔디밭을 돌며 풀싹을 뽑기 시작했다. 괭이밥풀, 누운주름잎, 벌씀바귀…. 모두들 ‘나 여기 있소’ 하며 얼굴을 내민다. 어느새 보랏빛 제비꽃도 군데군데 피어났다. 반가웠다. 제비꽃은 두고두고 보리라.

며칠 뒤 옆집에서 놀러 왔다가 제비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모두 뽑으라고 성화다. 제비꽃은 봄소식을 일찌감치 알려주기에 반갑고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예쁜 꽃을 왜 뽑아내야 하는지 반문을 하자 “언니, 그거 나중에 씨 날리면 잔디를 다 덮을 거예요.” 하더니 이내 꽃반지를 만들어 손을 들어 보인다. “어때 예쁘죠? 그래도 이건 뿌리가 잘 뽑히지도 않아서 작년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우리 집까지 씨가 퍼지면 안 되는데?” 한다.

그렇구나. 나만이 아니라 이웃도 생각해야 하는 거였다. 그때부터 마당 한구석에만 제비꽃 군락을 남겨놓고 죄다 뽑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꽃이 다 져서 어느 것이 제비꽃잎이고 어느 것이 잔디인지 잘 표시가 나지 않는다. 뽑아내는 것마다 밑동에 동그란 열매를 달고 있다. 이 열매가 익어 터지면 내년에는 제비꽃 천지가 될 터였다.

작고 앙증맞은 제비꽃이 오랑캐가 되어 이곳저곳에 퍼지니 잡초 신세가 된 것뿐이다. 잡초가 약초 되고 약초가 잡초가 되었다. 그러게 왜 아무 곳에 싹을 틔워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신세가 되었을꼬?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제비꽃이 딱하다. 악마의 손을 거쳐야 하는 그것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사람도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아무 데서나 설쳐대다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지 않던가. 나설 때 안 나설 때를 가리지 않고 늘 목소리를 키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혹시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서 있진 않았을까. 그리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을까. 나의 존재로 인해 불편했던 사람은 없었을까. 지금 나는 내 자리를 잘 알고 서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일이다.

가라, 가거라, 너의 자리에서 너희끼리 마음껏 자태를 뽐내보렴.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사이니 뭇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사진 속 모델이라도 되어 보렴. 꽃과 뿌리가 모두 약재로 쓰이고 화장품 재료로도 쓰인다니 인간에게 후한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제 자리가 아닌 곳에서 쭈뼛쭈뼛 앉아 있지 말고 너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꽃을 피워라.

호미질하는 손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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