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1% 상승했다. 월 기준으로 10년 3개월 만에 최고치다. 세계가 코로나19 영향권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수요가 늘어나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유·원자재, 농축수산물의 생산과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물가 상승은 수요가 살아나 경기가 회복되는 신호로 볼 수 있지만, 최근 오름세는 이와 다르다.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물가가 오르는 측면이 강하다. 실제 기업이 체감하는 경기는 나빠지고 있다.

한은이 발표한 3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면 모든 산업의 업황실적 BSI가 3개월 연속 하락했다. 향후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4월 전망 BSI도 역대 최저였다. 통계청의 산업활동 동향도 2개월 연속 산업생산이 감소세였다. 물가가 오르는데 성장은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최근 회복 기미를 보이는 고용마저 침체할 수 있다.

에너지와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하는 한국으로선 피하기 힘든 악재들이다.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31.2% 급등한 석유류다.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전화에 휘말리면서 밀가루, 식용유 등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다. 외식비도 급등해 점심 한 끼도 부담스러워졌다. 일상과 관련된 물가가 모두 요동치면서 생활물가는 5.0%나 상승했다.

문제는 물가를 더 끌어올릴 요인이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무너진 글로벌 공급망 복구 시점은 불투명하다. 미국이 전략비축유를 풀어 국제유가가 잠시 떨어졌지만 산유국의 증산이 없으면 다시 오를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은 지난 2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9%로 82년 1월 이후 40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유로존(5.9%)과 영국(6.2%)도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물가 상승을 촉발한 요인이 경제 분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감영병이나 지정학 등 경제 외적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도 물가 관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엄혹한 대외환경이 더해진 국내 경제여건은 간단치 않다. 대선 기간에 뿌려진 포퓰리즘 공약과 추경 50조원 편성 움직임은 향후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 대출규제 완화 등 새 정부가 약속한 여러 정책도 인플레를 부추길 수 있다.

물가는 단순 경제지표가 아니다. 자칫 민심 이반을 부를 수 있는 초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사활을 걸고 인플레 잡기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볍게 접근하면 걷잡을 수 없는 후유증을 낳게 된다는 점에서 근원적 대응이 시급하다. 인수위 권영세 부위원장은 지난 4일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탄식마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며 “물가가 더 크게 오를 잠재적 위험도 큰 만큼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나친 물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불러 오지 않을 까 우려되는 등 전반적으로 경제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절제절명의 시기다. 현 정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머리를 맞대고 물가관리를 최우선과제로 삼고 다각도의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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