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칼럼] 형제수족(兄弟手足)
[김병연 칼럼] 형제수족(兄弟手足)
  • 충청매일
  • 승인 2022.02.2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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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주예총 부회장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요 평론가였던 ‘보르헤스’는 환상적 사실주의에 기반(基盤)한 놀라운 상상력으로 20세기 후반의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시간의 미로를 더듬어 보니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당시 나는 중국의 학교에서 근무했던 관계로 8월이면 귀국했다가 9월이면 출국해야 했다. 그런데 출국 직전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한 바람에 2주 정도 늦게 출국하게 되었고, 그게 전화위복(?) 되어, 당초에는 9월 중순 막내조카 결혼에는 참석지 못할 형편이었지만, 가까스로 참석하고 출국할 수 있게 되었다.  

“형님 내일 중국으로 출국해요. 모쪼록 몸 건강하세요.”  결혼식장 출구에서 큰형과 헤어지면서 택시비로 5만원권 지폐를 한 장 드리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동생 고마워! 지난번에도 ‘만원’짜리인 줄 알았더니 ‘5만원’짜리더군!” 이것이 형님과의 마지막 대화일 줄이야! 생사이별이 꿈결과 같다. 큰 형님 때문에 난 대학까지 진학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형님에게 나는 불손하게 대했었다. 형님의 헤어질 때 뒷모습이 쓸쓸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그나마 작별인사라도 나눌 수 있게 된 셈이다. 바로 이것이 인연으로 직조된 시간의 미로였던가? 그로부터 이태 후에 둘째 형님조차 저세상으로 떠남으로써, 우리는 7남매에서 3형제만 남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 때문에 나는 자주 죄를 저지른다. 엔젠가 이들, 사랑스럽거나 미운 사람을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미운 사람은 사라질 것이요, 사랑스런 사람도 가고 오질 않을 것이다. 나도 사라져 버릴 것이며,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꿈속에서 알았던 것들처럼 모든 사랑스럽고 미운 것들은 사라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많은 사랑스런 사람과 미운 사람들이 사라져 갔다. 자못 그들 때문에 저지른 죄악들만 나의 눈앞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자못 그들 때문에 저지른 죄악들만 나의 눈앞에 남아 있을 뿐이다.’란 구절과 같이, 형님들께 자행했던 불손한 언행들이 자못 내 가슴을 후려친다.

장자(莊子)는 “형제는 수족(手足)이요, 부부는 의복(衣服)이라! 의복이 떨어지면 갈아입을 수 있지만, 수족이 끊어지면 이을 수가 없다.“라고 했다.  

우리는 명절이면 사촌들과 함께 제사를 지내왔다. 형님들이 떠나니 내가 맏이가 되었다. 젊은이들은 정부의 거리두기 시책을 핑계로 설날차례 대신 리조트로 가족여행 떠난다고 하지만, 우리집안은 사촌 간에 열 댓 명이 왁자지껄하는 성시(?)를 이뤘다.

제사를 마치고 날이 어두워지자 안방에서는 삼형제가 한방에서 자고, 윗방에서는 아낙네 삼동서 함께 잤다. 윗방은 심혈을 기울여 꾸민 온돌 황토방이다. 새벽부터 난 정성껏 장작으로 불을 지폈다. 형제간의 우애는 ‘여자하기 나름’인가 보다. 실로 오랜만에 어린 시절 함께 잤던 그 방에서 형제들이 잠자리를 함께 하며 화목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임인년(壬寅年) 원단(元旦)에 ‘형제수족(兄弟手足)’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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