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투쟁의 깃발, 펄럭임 소리, 진화의 벼랑에 선 존재들’을 노래하는 시인”

정규원 시인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구절초 농사꾼이자 시인인 정규원씨가 첫시집 ‘기러기엔진’(놀북/1만원·사진)을 출간했다.

2017년 충북작가 시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한 정 시인은 첫 시집을 내놓고 “배터리 충전을 했으니 시동이 걸릴 것이다. 배낭에 넣을 지도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농사꾼 시인으로 농사짓는 일 외에 또 다른 인생의 배터리가 충전된 셈이다.

시집 ‘기러기엔진’은 전체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는 ‘봄’ ‘우주로 한 뼘’ ‘나의 길은 강이다’ ‘숲’ 등 농촌에서의 삶이 엿보이는 작품이 담겨 있다. 2부 ‘여름’ ‘기우제’ ‘귀룽나무’ ‘장마의 심장’ ‘호미’ 등의 작품이, 3부 ‘멧돼지’ ‘논까페’ ‘문의마을’ ‘옥새봉 이야기’ ‘구절초꽃’ ‘슬픔발효항아리’ 등의 작품에서 청주시 문의면으로 귀농해 구절초 농사를 짓는 농부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 들어 있다. 4부는 표제작인 ‘기러기엔진’을 비롯해 ‘근육단련법’ ‘호수’ 강태공에게’ ‘하얀눈’ ‘도시 여자’ ‘슬픔이 내려오면’ 등의 작품을 실었다.

정 시인은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10여년 전 쯤 대청호가 보이는 마을로 내려와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시인은 단순히 농사만 짓는 일보다 판매와 유통도 늘 함께 고민했다.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문학에 대한 고민도 떨쳐내지 않았다. 정 시인은 자연 순환농법을 추구하며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농부, 때론 자연과 인생을 음미하며 노래하는 시인, 사회 모순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민주시민 행동가, 환경을 보존하고 지구를 살리고자 노력하는 환경지킴이이기도 하다.

시인이 도시를 떠나 문의에 정착한 목적은 도시의 치열한 삶 속에 얻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구절초를 만났다. 이를 계기로 치유농업에 대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시인은 구절초의 효능과 꽃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다양하게 쓰이는 멋에 심취했다. 구절초가 시인의 몸을 치유해 주고, 시를 짓게 해준 것이다.

‘기러기엔진’의 기러기 날갯짓에는 통증이 따르지만 다이내믹한 성능, 자유, 사랑, 투쟁, 진화를 거듭하며 희망을 꿈꾼다. 이는 유토피아로 가는 동력이다. 현실, 고통, 모순을 타파하고자 하는 시인의 몸부림이다.

멧돼지 막을 방법으로 농장을 빙 둘러서

철망을 쳤고, 지독한 여름 가뭄에도 연일 물

을 주어 살려놨더니 농사가 제법 잘 되었다.

풍성한 가을이 왔다.

옥새봉 농부들은 구절초 화전을 준비했다.

구절초 억새꽃이 만발한 옥새봉에 기타 소리,

풍물 소리 울리고 막걸리에 꽃잎을 띄웠다.

옥새봉 하늘을 보았다. 올해 농사는 이렇

게 마무리되어가고 내년 농사가 저만큼 다가

와 있다. 옥새봉 농장에 들어서면 돌탑 위에

세운 풍경 소리가 난다.

-‘옥새봉 이야기’부분-

시 ‘옥새봉 이야기’는 시인의 농장을 대하는 자세와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때로는 멧돼지와 고라니의 피해로 어려움을 겪지만 오히려 상생한다는 생각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미래를 위한 멋진 설계로 꿈이 부풀어 있다. 그곳엔 구절초가 지천에 피어있을 뿐 아니라 유기 농산물 생산의 터전이 되고, 함께하는 공동체 회원들과 협동으로 농사지으며 나눔하는 곳이다. 모든 현상을 좌절 보다는 희망으로 보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시집 뒤에 발문을 써준 민성기 농부는 “시인은 깊은 사유에서 나오는 철학이 담긴 관념적인 시를 쓴다. 또한 시인이 겪고 느낀 생생한 시이기에 더욱 감동이 크다. 56편의 주옥같은 시들이 나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두고두고 애송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시인의 문학적 스승이기도 한 이종수 시인은 “지구의 심장을 설계하는 엔지니어이자 ‘사랑과 투쟁의 깃발, 펄럭임 소리, 진화의 벼랑에 선 존재들’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자 단가 한 자락을 구성지게 부를 줄 아는 지구 농부여서 오히려 시가 그의 가슴에 들어와 잘 놀다 가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했던 삶을 구절초 농장 절터에 묻고 두루봉 동굴 용을 기다리는 천진한 청년이자 농부로 다시 사는 길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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