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첫 아이가 내게로 왔을 때 처음에는 두려움이 일었다. 일일 연속극에서 볼 수 있는 환희와 떠들썩한 환영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가 과연 엄마 노릇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내가 한 생명을 책임질 만한지 어떤지로부터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앞서기도 했다.

권정민의 ‘엄마 도감’은 모자 수첩의 주인공이 아기가 아니라 엄마이다.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이다. 엄마의 자리에 대한 혁명이다. 아기가 엄마를 관찰하며 조목조목 적어 내려간다. 엄마들만 그런 게 아니라 아기도 엄마에게 집중하여 아기의 탄생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여자, 바로 엄마의 탄생부터 시작한다. 일 년여의 동행으로 엄마가 된 한 존재의 겉모습과 심리적 변화를 엄마가 모자 수첩 기록하듯 아기 눈으로 엄마를 관찰해 세세히 기록한다.

가장 존귀하고 의미 있는 순간은 아기에게만 집중된다. 그러나 그림책은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한 여자에게 집중하고 있다. 엄마가 모자 수첩을 기록하듯 세세히 간절하게. 단지 일 년에 그쳐 아쉽긴 하지만 계속하리란 기대도 해 본다.

아기와 엄마의 첫 대면, 아기는 엄마가 처음이고 아기는 엄마가 처음이다. 그러나 둘만의 만남을 위해 사력을 다하기는 엄마나 아기나 똑같은 무게일 것이다. 둘 다 상상 이외의 외모에 실망하기도 할 것이다. 아기야 바로 엄마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니 엄마의 실망 아닌 실망이 크다.

그러나 아기의 외모가 어떠하든 엄마는 엄마의 역할에 본능적이다. 아기가 엄마의 외모에 주목한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한 채. 소통이 안 되는 아기의 삶에 엄마는 허둥대며 등장하고 아기는 그런 엄마를 살핀다. 생후 백일이 되어야 사람다운 울음과 미소를 보여주는 아기에게 엄마는 쩔쩔맨다.

모든 언어가 울음 아니면 웃음으로 표현되는 아기는 누워서 엄마의 모든 것을 따라다닌다. 엄마의 생김새 몸의 구조 신체변화 잠자는 것 엄마의 가방 등등을 여러 관점에서 관찰한다. 어쩔 수 없이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기지만 엄마의 노고에 보답이라도 해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아기의 관찰은 신선하고 눈물겹기조차 한 발상이다. 아기의 탄생과 함께하는 엄마의 탄생에 주목한 것과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아기의 눈으로 본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감에 주목하게 한다.

이 책에는 초보 엄마와 초보 아기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미리 학습했겠지만 움직이는 생명체가 주는 엄청난 과제 앞에 잠시라도 방심하면 큰일이므로 엄마 몸은 아기의 움직임에 특화가 되어간다. 이리저리 뛰는 것도 모자라 날아다니는 엄마가 무사하기만을 아기는 바란다. 엄마는 아기가 먹는 것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 같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꾸벅이는 엄마. 아이는 배변도 엄마와 함께할 때가 많다.

엄마는 어디에서 와서 나를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연구대상임엔 틀림없다. 이런 아기의 바람은 아기의 성장과 함께 엄마의 삶도 소중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일, 자라가는 일은 단지 저만 자라는 게 아니라 부모도 자라게 한다. 엄마도 아이와 함께 자란다. 아이는 성장하고 엄마는 성숙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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