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10세기경, 어느 날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북쪽 견융은 제사에 쓰일 공물도 보내지 않고 인사하러 오지도 않는다. 나는 그들을 군대를 동원해 정벌하고자 한다. 여러분의 의견을 말해보시오!”

그러자 신하 모보가 아뢰었다.

“군대란 그 움직임이 신중해야 합니다. 때에 맞추어 행동해야 위엄이 있지 그렇지 않으면 장난이 되어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전에 왕들은 무력보다 덕행을 중요시하셨습니다. 주공단께서는 전쟁 대신 덕을 시행하여 천하를 돈독히 하셨습니다. 전쟁이 없으니 백성들은 농사에 힘쓰고 살림살이가 늘어나니 나라가 편안해졌습니다. 그런 까닭에 주나라가 천하를 호령했던 것입니다. 하오니 군대를 동원하는 일이라면 천자께서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목왕은 그 말에 기분이 상해 소리쳤다.

“이전에 무왕께서는 군대를 이끌고 천하를 호령하였다. 군대가 아니면 그러면 무엇으로 천하를 굴복시킨단 말이냐?”

모보가 다시 정중히 아뢰었다.

“무왕 때 상나라를 멸하고 나라 안 사방 500리를 전복(甸服)이라 하여 이곳의 우두머리들은 천자의 모든 제사에 직접 참석하게 했습니다. 전복에서 다시 500리 안을 후복(侯服)이라 하여 이곳의 우두머리들은 큰 제사인 사(祀)에만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후복에서 다시 500리를 빈복(賓服)이라 하여 이곳의 우두머리들은 제사에 필요한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빈복 밖으로는 요복(要服)이라 하였는데 이곳은 제사 때면 공물을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그 너머 지역을 황복(荒服)이라 하였는데 이곳은 천자의 말에 복종하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약속을 위반하면 처음에는 그 이유를 올리는 것으로 용서가 되었습니다. 이유마저 올리지 않으면 권유하였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형벌을 내려 다스렸습니다. 그래도 따르지 않으면 비로소 군대를 보내 정벌하였던 것입니다. 견융은 충실히 주나라를 받들었습니다. 이들이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군대를 동원한다면 천하가 다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하오니 덕으로 다스리기 바랍니다.”

하지만 목왕이 이를 무시하고 끝내 군대를 동원해 견융 정벌에 나섰다. 바쁜 농사철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군대를 편성했다. 그 군대가 서북쪽 몇천 리까지 행군하여 견융 지역에 이르렀다. 하지만 견융은 싸우지 않고 바로 항복했다. 항복의 표시로 진귀한 동물인 흰 이리와 흰 사슴 네 마리를 바쳤다. 목왕은 전리품을 보자 매우 흡족하게 여겼다. 하지만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못하였으니 빈곤해졌고, 나라는 세수가 부족하니 가난해졌다. 그러자 사방의 제후들이 왕을 우습게 여겨 조회하러 오지 않았다.

갱무도리(更無道理) 이전에 좋은 상황을 잃어버려 다시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좋은 제도이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특권층을 없애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사라진다. 그때 가서 다시 피눈물을 흘리며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보다는 투표를 잘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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