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수도권 규제와 국가 균형발전은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방의 희망이자 요구이다. 통상 수도권으로 불리는 서울, 인천, 경기 지역에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집중되어 있기에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는 보는 것이다. 수도권에는 우리나라 인구의 정확히 절반인 50%가 살고 있다. 제10차 경제총조사에 따른 지역별 산업소득에서도 수도권이 국가 전체의 55%를 차지한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의 규제와 균형발전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현상(차이)을 문제로 보는 시각에 의문이 생긴다. 시장주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신의 능력과 합당한 의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차이를 옳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하는가? 어떤 기준에서 옳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국가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차이는 우리나라 수도권 집중의 문제보다 훨씬 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소위 선진국의 경제적 위상은, 그것이 후진국들의 희생을 밟고 달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정당하고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평가받는다. 차이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인식되는 것이다.

시각을 돌려서, 가정이나 개인의 범주에서는 ‘차이의 정당성’에 대한 인식이 더 두드러진다. 우리 가정이 다른 가정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위치에 있는 것은 나의 능력에 따라 합당한 대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인식한다. 사회적 정의를 생각하게 되는 가끔의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다들 이렇게 인식하며 살아간다.

지역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충청북도의 11개 시·군은 제각기 다른 사회적 지표를 가지고 있다. 그중 두드러진 것은 청주시가 가지는 위상이다. 청주시는 충북 인구의 53.6%를 차지하고, 산업매출액도 49.1%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를 문제라고 말하거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라고 말을 하더라도, 정작 말뿐이다.

왜 그런 것일까? 세계적, 개인적 그리고 지역사회의 공간 범위에서는 ‘차이의 정당성’을 그다지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서 왜 유독 국가적 차원에서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는 문제이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차이의 정당성’에 대한 이 인식의 차이에는 불편한 모순이 숨어있다.

필자는 수도권 규제와 국가 균형발전에 대한 지방의 요구는, 시장주도 자본주의 체제에 부합하지는 않으나, 사회적 정의와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면적이 전 국토의 11.8%밖에 되지 않는 수도권에 인구 50.0%(집중도 4.24), 산업매출액 55.0%(집중도 4.66)의 치우침은 상생, 공존, 포용 등의 가치관에서 볼 때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충청북도 면적의 12.7%밖에 되지 않는 청주시에 인구 53.6%(집중도 4.22), 산업매출액 49.1%(집중도 4.16), 산업이익 51.2%(집중도 4.34)의 치우침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10개 시·군에서 볼 때 청주시는 수도권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청주시에는 많은 개발이 끊임없이 집중되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열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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