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식 작가, 앤솔로지 ‘느낌 그게 뭔데, 문장’ 출간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문득 내 어머님께서 뚝 꺾어주시던 그 솔가지, 달콤한 물이 쪼르르 흐르던 그 가지가 이것이 아니었던가 싶어지면서 내 입속이 환해진다. (56쪽)

- 강경애 <내가 좋아하는 솔> 중 -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를 한자리에 묶은 앤솔로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사진)’(우시모북스 간)이 출간됐다.

‘문/장/수/집/가/’로 팟캐스트 ‘북적북적톡설’을 운영 중인 출판기획자 윤재식(59) 작가가 ‘포충망’에 걸린 느낌 있는 문장을 찾아 수집한 45편의 감동 글을 담아 엮은 것이다. 윤 작가는 32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 글쓰기, NIE, 방송반 등의 활동을 지도하고 진로진학 상담교사로 살았다. 퇴직 후 출판기획자로 제2의 인생을 열었다.

윤 작가는 한국 현대문학사 100년 자료 가운데 1만여 편의 산문을 수집하고 다시 45편의 산문을 골랐다. 문인들의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 신선한 주제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선명하게 그린 산문, 여행자의 기록인 길 위의 인생, 문단이면사, 우리말 바로 쓰기, 예술가의 첫사랑 등으로 주제를 나눴다.

제1장 시처럼 산문에서는 ‘책은 빌리는 사람도 빌려 가는 사람도 모두 도적’이라는 금언을 재삼 확인시켜주는 책에 관한 빼어난 글 이태준 소설가의 ‘책’속에 담긴 문장을 옮겨 왔다. 32세로 너무 빨리 떠났지만 짧은 생애 속에서도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백신애 소설가의 ‘자수’, 평양냉면에 대해 입맛을 다시며 읽게 만드는 소설가 김남천의 글 ‘냉면’, 시인 소설가 영화배우 영화감독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 심훈이 작고 1년 전에 쓴 서정적인 산문 ‘7월의 바다’, 1930년대 《구인회》 멤버이자 모더니즘 문예 이론가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문학평론가 김기림 시인의 산문 ‘가을의 누이’, 역설적이게도 라면으로 느림을 서술하는 유쾌한 필체, 라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산문 이문재 시인의 ‘누가 라면을 함부로 말하는가’ 등의 문장을 소개했다.

제2장 느낌은 그리움처럼, 아무튼 산문에서는 서슬 퍼런 1942년 일제 강점기 《성서조선》 잡지 권두언에 실어 잡지 폐간 파동을 겪은 김교신의 ‘조와(弔蛙)’,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 일파에게 피살돼 전설이 된 ‘선죽교’는 그 사건 5년 전에 이미 ‘선죽교’로 불리고 있었다는 역사적 고증을 살핀 미술사학자 고유섭의 ‘선죽교 변’, 제주 올레길을 만든 이야기로 언론인 서명숙의 ‘행복한 걷기’, 번역가로 대한민국 독서계에 두꺼운 팬층을 갖고 있던 이윤기 소설가의 번역하는 자세의 글 ‘잘 익은말을 찾아서’, 대중소설로 쌓은 인기를 한민족의 진취성과 능동적인 삶을 그린 역사소설 작가로 좋은 작품을 남긴 최인호 소설가의 매력적인 산문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문장을 선별했다.

제3장 길 위의 인생, 여행자의 기록에서는 29년 짧은 인생 시인으로 살다 떠난 기형도시인이 남긴 매력적인 여행기 ‘짧은 여행의 기록 : 제3 묘원에서 만난 사람’, 수필가 전혜린과 독일어로 발표한 명작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의 추억담 ‘이미륵씨의 무덤을 찾아서’, 1974년 영국 유학 중 음악의 고장 비엔나를 여행한 김병모 고고학자의 유쾌한 여행기 ‘비엔나로 가는 밤기차’ 등의 여행산문속에 등장하는 문장들을 담았다.

제4장 제발 그 음악은, 음악 세상 편에서는 음악에 대해 남다른 안목과 명성을 가진 영문학자 황동규 시인의 음악사랑 ‘음악이 있는 삶’, 자신만의 음악을 찾아 방랑하는 오디오 기기 순례자의 여정을 그린 사진작가 윤광준의 ‘오디오에 미친 사람들, 오디오 파일’, 중학생 록밴드 기타리스트 아들과 송도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발을 체험한 경험과 ‘백 판’ 세대의 회고담인 하종강 교수의 ‘딥 퍼플을 만나다’ 등 음악과 관련한 산문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담았다.

제5장 문단 이면사에서는 한국 문단 이면사의 다양한 기록을 흥미 있는 필체로 그린 이유식 문학평론가의 ‘일찍 데뷔한 조숙한 문인들, 고3 여름방학에 강원도 봉평을 찾아 떠난 최인석 소설가의 ‘메밀꽃과 A.T.T’, 1980년대 청주로 쳐들어가 대격돌을 벌이는 1박 2일 대회를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는 이동순 시인의 ‘김지하 시인과의 노래 시합’. 한국 문학사의 저력은 ‘가족’이라는 든든한 ‘언덕’ 덕분이 아닐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통계로 보여준 윤작가의 ‘가족 문단사’ 등에 담긴 문장들을 가져와 윤작가의 시선으로 설명해 주었다.

제6장 예술가의 첫사랑에서는 학창 시절 국어 시간, 언제 들어도 귀가 솔깃하던 소설가와 시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가져 왔다. 시인 이재무의 ‘혼자서만 꺼내 보는 내 마음 벽장 속의 이야기’, 김이듬 시인의 느낌 서늘한 발라드 ‘잊어야 한다는 이름으로’, 이정록 시인의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등에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윤재식 작가는 “국어교사로 30년 이상을 살며 수 많은 문장들을 접했다. 이 많은 문장 중 감동을 받거나 특별하게 와 닿는 문장들을 독자에게 소개해 알려주고 싶었다”며 “걷다가 걸음마저 멈추게 할 만큼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산문 45편을 책 한권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선별했다. 바쁘고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느낌과 가슴 서늘한 감동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윤 작가는 충북 청주에서 출생해 1994년부터 매주 수요일 우리한국현대시 3편 읽기 ‘우리시사랑모임’을 운영하고 ‘우리시읽기 나눔지’를 발행하고 있다. 문학전문 팟캐스트 ‘북적북적톡설’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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