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구 무대미술’ 출간
1990~2020년 작품 소개

무대미술가 민병구씨 작업실에서.
무대미술가 민병구씨 작업실에서.
민병구 무대미술 표지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무대미술가 민병구씨(한국화가/ 중부무대미술연구소장)가 30년간 작업한 무대미술 작품을 두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도서출판 컬처플러스의 ‘민병구 무대미술’.

이 책에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연극, 뮤지컬, 행사 등의 무대미술 사진과 함께 연필로 그린 무대 스케치, 무대 평면도가 들어있다. 민 작가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제작했던 무대사진들로 꽉 차 있다.

1권에는 극단 상당극회의 ‘품바’를 시작으로 1990년부터 2012년까지 90여 연극무대 작품이, 2권에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연극, 무용, 이벤트(행사) 등 70여 개의 무대 작품이 소개됐다.

권말에 실린 작가연보와 ‘고마운 분들과 함께’라는 챕터에서 저자는 국가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 예능보유자 박재희 교수를 비롯해 배우 이순재·전무송·최종원·윤석화씨 등과 찍은 사진을 담았다.

또한 1997년 충북연극협회 ‘역마살’, 1999년 극단 청년극장 ‘산불’, 1999년 극단 청사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등의 공연에 참가했던 배우와 스태프들의 단체 사진도 담겼다.

민 작가는 “무대미술이란 액자 속에 살아있는 그림을 표현하는 일이며 현실에서 허구를 재현하는 여행 속에서 관객의 상상력과 여정에 호소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찌 보면 창조 공간에서 작품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무대의 막이 오르면 정지되어 있던 모든 무대 구조물에 어둠과 빛이 깃든다”며 “무대미술은 결국 탐구에 의해 상황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에 수직으로 대칭되는 도면상의 허구 공간에서 공연하는 배우들의 진실을 원근법의 시선으로 사랑하며 묵묵히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민 작가는 약속한 한정된 시간 안에 완성도 높은 무대미술을 만들기 위해 사생활도 잊어야 했다. 수많은 공연 제작자와 좌충우돌하며 3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작업실 책상 위아래에 2천800여 개가 넘는 무대 도면과 스케치, 연극 대본, 공연 필름, 사진 등이 수북이 쌓였다.

민 작가는 이 모든 자료들이 기억에 머물며 묻히고 잊혀 지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앉는 자료들이지만 작가 스스로의 지난 역사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자료로 묶었다.

민 작가는 국내에서 무대미술을 주제로 한 도서가 흔차 않아 이번 책 발간이 후배 무대미술가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민 작가가 무대 미술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다. 얼떨결에 극단 새벽의 정기 공연 무대를 제작하게 됐다. 무대는 3일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몰두한 끝에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무대에서 액자를 걸고 장식을 하며 배우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 배우와 연출가가 호흡을 같이하며 앙상블을 이루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마도 그 모습 때문에 마음이 무대로 끌리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무대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컷 한 컷 찍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공연 리허설 전 찍어 두었던 순간순간의 정지된 모습들이 이제는 시간의 뒤안길에서 빛바랜 추억이 되었습니다.”

민 작가는 많은 젊은 무대 미술인들과 제작소가 코로나19와 같은 어려운 예술계의 현실로 경영난을 못 이겨 문을 닫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 나가 무대미술 작업한 자료들이 폐기물로 사라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아 왔다. 귀중한 자료와 보물 같은 무대장치들이 사라지고 그 속에 담긴 역사마저 사라지는 안타까움을 지켜보면서 이것이 우리의 열악한 연극예술계의 현실임을 실감했다.

“무대미술가라는 직업이 주어졌지만, 무대미술에 대한 경영철학이 정립돼 있지 않습니다. 그저 한 인간이면서 한 예술인으로서 체험 속에서 체득하면서 현재에서 미래를 그리면서 다져왔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망치와 붓과 연필을 잡던 그 시절,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이창구 교수님의 지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 무대미술가 고(故) 송관우(본명 송길근) 선생님을 소개 받아 많은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민 작가는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쉴 틈 없이 무대와 함께 살아왔다. 가끔은 작품이 졸작이라는 생각도 했다. 무대미술이란 화가라는 신분을 벗어나 일반인과 전문가의 눈높이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일이다. 상상력의 측면에서 거침없이 대담함이 필요하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대를 제작하느라 늘 어두운 곳이 일터가 될 수밖에 없다. 비록 육체는 힘들고 작업은 혹독했지만 무대의 막이 오르면 누구보다 큰 성취감을 느낀다.

민 작가는 무대미술이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2007년 청주 예술의전당 전시실에서 무대미술전을 열어 무대디자인, 공연 자료 사진, 리플릿, 무대소품, 포스터를 진열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그는 건강이 좋지 않다.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일할 수 없지만 무대미술에 대한 애정은 버릴 수 없다. 공연이 끝나면 버려지는 무대를 ‘기록’으로 남겨 많은 후배들이 활동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박계배 호원대학교 예술대학장은 발간축하글에서 “눈에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예술가의 열정과 땀이 담겨있다. 무대예술은 공연을 더 재미있게 뒷받침해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공연 무대를 보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기록으로 남긴다면 다음세대에게 더 나은 예술의 길로 안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고 전했다.

이번 ‘민병구 무대미술’ 출간은 향후 대한민국 공연계의 무대미술 대중화에 크게 기여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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