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칼럼]1·21일 사태와 예비군의 탄생
[오늘의 칼럼]1·21일 사태와 예비군의 탄생
  • 충청매일
  • 승인 2021.01.26 16: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세영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충청매일] 지난 21일은 지금으로부터 53년 전인 1968년 1월 21일에 북한의 124군 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한 날이다. 이러한 북한의 천인공노할 도발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세월이 아무리 지나가더라도 이 사건만은 결코 잊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북한은 6·25전쟁에서 실패한 이후에 남한에 대한 남침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다양한 형태로 침투 행위를 지속적으로 자행해 왔다. 그러나 갖가지 도발 행위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틈을 보이지 않자 급기야는 대한민국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까지 습격하는 끔찍한 만행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에 정부는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비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같은 해 4월 1일에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역사적인 예비군 창설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창설된 예비군은 같은 해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제대로된 장비와 복장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약 2개월에 걸친 울진과 삼척지역에 침투한 120명의 무장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하여 이중 7명을 생포하고 113명을 사살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89회의 대침투작전에 현역과 함께 참가하여 지대한 전과를 세웠다.

이뿐만 아니라 예비군들은 재해재난으로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제일 먼저 달려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땀을 흘리며 함께해 왔다. 그래서 예비군 분야의 전문가들은 예비군들을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될 산소 같은 존재라 표현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이렇듯 국가안보의 앞장서온 현역과 예비군 덕분이다.

지난 6일 제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핵억제력 강화, 최강 군사력 강화를 위한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연초부터 군사력 강화에 대한 야욕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통일도 언급했는데 북한의 통일은 변함없이 적화통일을 의미한다고 볼 때 언제라도 군사력을 사용하여 도발도 서슴치 않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진퇴양난의 일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계속되고 전 세계를 공포에 속으로 물아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 경제적 어려움 여기에 북한에 강경 입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 바이든 정부의 출범 등 어디 하나 눅눅한 것이 없는 실정이다. 우리들은 과거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어 알고 있듯이 한 국가가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눈을 밖으로 돌리는 것을 자주 보와 왔다. 북한이 현재 처하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의 행동을 좀 더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53년 전 북한의 무장공비 31명이 대한민국의 심장인 청와대까지 침투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아마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분단 이후 끊임없이 자행해온 갖가지 도발 형태를 볼 때 또다시 그 어떠한 형태의 도발 행위를 자행할지 아무도 모른다. 북한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도발도 서슴없이 자행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들은 아직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상황으로 모든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한 번쯤은 과거 1·21사태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안보상태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1월 끝자락이 되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