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칼럼]무심회, 무심(無心)으로 돌아가자
[김병연 칼럼]무심회, 무심(無心)으로 돌아가자
  • 충청매일
  • 승인 2020.12.0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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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주예총 부회장

[충청매일] 코로나19사태로 힐링(healing)이 더욱 절실하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산다는 것은 만남인데,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마을회관은 문을 열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바야흐로 ‘언텍트(untact:비대면) 사회’가 도래한 셈이다. 영국수상도, 미국대통령도 입원하거나 격리되는 등, 코로나 앞에선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힐링’이란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다는‘이고득락’(離苦得樂)이다. 인생의 문제는 고통에서 출발한다. 고통과 행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이 온전하여 평안하면 행복이 오고, 마음이 분열되면 갈등과 불안으로 고통이 온다.

‘병의 원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것을 이장(二障: 두 가지 장애)이라고 한다. 첫째가 이치를 모르는 ‘이장(理障)’이요, 둘째는 잘못된 습관이 장애가 되어서 ‘사장(事障)’이라고 한다.

이것이 생성한 과정은 12연기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고통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죽음은 늙고 병이 원인이요, 늙음은 태어났기 때문이요, 이렇게 거꾸로 계속 추적해 보니, 죽음의 근본적 뿌리가 무명(無明)이었다. 그래서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노老)-사(死)’라는 12연기 공식이 나왔다.

이치를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세상을 잘못보고 있다. 이 세상은 원래 마음 하나뿐인데, 내 몸이 ‘나’인 것으로 착각한 것에서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그러면 ‘너와 나’구분하게 되고, 이때부터 분열과 갈등이 나온다. 이와는 반대로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고 ‘한 뿌리, 한 몸’으로 사는 것은 ‘무분별(無分別) 지혜’라고 한다. 천지동근(天地同根) 만물일체(萬物一體)라!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고, 네가 있으므로 네가 있다. 이것은 연기(緣起)적 세계관으로서 ‘영원한 지혜’에 해당된다.

무명이 원인이 되어 습관화된 것이 ‘사장(事障)’이다. 육신에 노예가 된 삶이 습관화 된 것이‘에고(Ego)’이다. ‘에고’는 ‘번뇌 망상’과 ‘전도몽상’을 불러온다. 근심 걱정으로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것이 ‘번뇌 망상’이고,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거꾸로 보며, 헛된 꿈을 꾸고 있으면서도 꿈인 줄 모르는 것이 ‘전도 몽상’이다.

힐링은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고, ‘전도 몽상’에서 깨어나는 영혼의 밭을 가는 작업이다. 그 일환으로 필자는 테니스를 좋아한다. 주로 청주, 동탄 등에서 테니스를 치지만, 최근엔 고향 영동에서 치기위해 가입한 클럽의 명칭이 ‘무심(無心)회’였다.

‘무심’이란 무엇인가? 무명에서 비롯된 ‘번뇌 망상’과 ‘전도몽상’에서 탈피하여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음이 깨끗하면 부처(佛)요, 마음이 밝은 것이 법(法)이요, 가는 곳마다 걸림이 없이 밝은 것이 도(道)’라고 한다. ‘에고’에서 벗어나 이기심이 없는 마음이 ‘무심’이다.

사람은 누구나 깨달음의 성품인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태양을 가지고 있으나, ‘번뇌망상’과 ‘전도몽상’이라는 구름에 가려 태양을 보지 못한다. 어두운 마음만 없어지면 태양은 저절로 드러난다. 무심을 통하여 우리들의 본래 성품인 자성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  

테니스를 통하여 영혼의 밭을 가는 무심(無心)회! 무심으로 돌아가 우리들 마음에 자성의 등불을 밝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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