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197년 후한(後漢) 말기, 헌제가 조조(曹操)를 승상으로 삼아 전권을 부여했다. 이때부터 조조는 자신이 천하를 지배할 야심을 드러냈다. 특히 인재등용에 집중하였는데 학식이 뛰어나거나 병법에 능한 자라면 과거의 경력을 문제 삼지 않고 자신의 휘하에 두었다. 이로 인해 벼슬을 얻고자 조조를 찾아오는 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그 무렵 예형이라는 천하제일의 인재가 있었다. 언변과 술사가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해 당시 잘못된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독설가로 선비들에게 정평이 나있었다. 관리들은 혹시라도 예형에게 꼬투리를 잡혀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멀리했다. 그런데 관리 중에 당시 천하의 기재라는 북해 태수 공융은 예형을 존중하여 가까이 지냈다. 한 사람은 천하의 기재이고 한 사람은 천하의 인재이니 제법 어울려 보였다.

어느 날 공융이 표문을 올려 예형을 추천하였다. 조조가 예형이 과연 어떤 인물인가 궁금하여 불러들였다. 하지만 예형은 병을 핑계로 가지 않고 도리어 찾아온 관리에게 조조를 비방하였다.

“지금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는 바로 조조다.”

조조는 이 말을 전해 듣고도 출세를 위해 몰려든 많은 인재들을 제쳐놓고 예형을 관리로 임명했다. 하루는 조조가 신하들에게 예형을 선보이고자 했다. 예형이 많은 신하들 앞에서 인사하는 것은 좋았는데 갑자기 조조가 있는 문전 앞에 이르러 큰소리로 조조를 꾸짖는 것이었다.

“어떻게 천하의 정치를 당신 맘대로 한단 말이오!”

너무도 오만하고 방자한 행동이었다. 조조가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그를 죽이려 하였다. 하지만 천하 인재를 함부로 해쳤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꾹 참았다. 사실 조조는 자신 앞에서 옳은 소리하는 선비들을 무척 싫어했다. 며칠 후 조조는 예형을 형주태수 유표(劉表)에게로 보냈다. 유표는 예형을 극진하게 대접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예형은 유표에게도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지금 조정에는 공융 한 사람만 필요할 뿐이지 나머지는 모두 쓸모가 없소.”

이 말이 유표를 화나게 만들었다. 유표는 예형을 죽이고자 했으나 조조가 보낸 사람이라 분을 참으며 그를 강하 태수 황조에게로 보내버렸다. 강하에서 예형은 얼마 동안에는 황조와 잘 지냈다. 그런데 하루는 황조의 아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위세를 떨고자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그때 손님 중에 누군가 앵무새를 바치며 황조의 아들을 크게 칭송하였다. 그러자 예형이 이를 보고 독설을 참지 못하고 앵무부라는 시를 지어 비난하였다. 본래 황조는 성질이 급하여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자신의 아들을 비난한 예형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나중에 조조가 이 보고를 받고 그저 한 마디 했을 뿐이다. 나는 불편하고 적장에게 주기는 아까운 인재 한 명이 죽었구나.

차도살인(借刀殺人)이란 남의 칼을 빌려서 반대자를 죽인다는 뜻이다. 삼십육계 중 제3계로 자신의 손에 피 안 묻히고 다른 사람을 시켜 일을 깨끗이 처리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니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욕먹을 일도 없고 죽을 일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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