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 행수, 그래 무슨 일로 여기까지 행차를 하셨는지요?”

“실은 가흥창의 세곡 운송권을 불하받아 그걸 싣고 왔다네. 아마 사월 말까지는 쉴 틈도 없이 해야 마무리가 될 걸세.”

“이번에 세곡 운송권을 빼앗겨 큰 수입원이 없어졌다고 경상들이 난리던데 그 장본인이 바로 최 행수였습니다, 그려?”

“한양 같은 큰 장에서 그까짓 걸 갖고 죽는 소리들을 하던가?”

“오만 섬은 족히 넘을텐데 그게 적은 양입니까? 그래 운송은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대선으로 사선 스무 척을 새로 지었다네.”

“대선으로 스무 척이나요? 대단하십니다!”

상갑이가 최풍원의 배포에 감탄했다.

지금까지 가흥창의 세곡은 한강을 오르내리는 경강상인들이 독점하여 운반해왔다. 세곡은 일 년 내내 운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월부터 오월까지 정해진 기간 안에 한양의 경창까지 운반하는 한시적인 일이었다. 경강상인들은 팔도를 떠돌며 장사를 하다 세곡을 운반하는 때가 되면 도가의 여러 배들을 모아 운송을 하고 일이 끝나면 해체를 하고 다시 자신의 생업으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한양의 거상들 중에도 자신 소유의 배를 스무 척이나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최풍원은 세곡을 운반하기 위해 새로 사선을 건조했던 것이었다. 조운이 끝나면 배를 운용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더구나 그 배를 짓느라 들어간 막대한 돈은 아직 태반이 빚으로 남아있는 형편이어서 이번 한양 나들이에서 반드시 그 해답을 찾아야 했다.

“최 행수, 세곡 운반이 끝나면 그 배를 어떻게 할 셈인가요?”

“그래서 한양에 온 걸세. 좋은 일거리가 없겠는가?”

“도거리밖에 없습니다. 지금 한강변 사상들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미곡이나 해산물을 도고해서 큰 수익을 얻고 있습니다. 어떤 사상들은 더 큰 차액을 남기기 위해 산지의 물산을 직접 도거리하기 위해 배를 건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 행수께서는 이미 배를 스무 척이나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유리합니까? 삼개는 강과 바다가 모두 통하는 곳이라 뭍에서 나는 산물이나 바다에서 나는 산물이 모두 집산되는 곳입니다. 스무 척이나 되는 많은 배를 운용하려면 물량이 많이 움직이는 삼개에 전을 하나 내세요!”

최풍원이 품고 있는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상갑이가 삼개에 북진여각의 상전을 하나 낼 것을 권했다.

“그렇게 함세. 자네가 많이 도와주게나.”

최풍원이 마음을 굳히고 상갑이에게 부탁을 했다.

“가는 길에 각 시전에서 운영하는 공방도 둘러보고 가세!”

유필주가 최풍원에게 말했다.

원래 공방은 왕실과 관아에 필요한 물산을 조달하기 위해 나라에서 작업장을 짓고 그 방면에서 뛰어난 장인들을 고용하여 물건을 만들게 하던 곳이었다. 장인들은 조정에서 필요로 하는 물산을 공급해주는 대신 국고의 잉여분을 받아 육의전의 시전상인에게 처분하는 식으로 공방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사상인들의 상권이 점차 커지면서 공방에서 공급하던 물산을 대신 공급하게 되자 공방의 존재는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대신 시전상인들은 공방에서 작업하던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인건비를 지불하며 전적으로 물산 생산에만 전념하게 했다. 최풍원이 둘러본 공방에는 수십 명의 직공들이 한 자리에 모여앉아 베를 짜고 있었다. 그들은 베를 짜는 여러 공정들 중에서 한 가지씩만 맡아 일을 했다. 농가에서 가내수공업으로 할 때는 한 사람이 모든 공정의 일을 해야 했으므로 틈이 생겨 능률을 올리기가 힘들었지만 공방에서는 자기가 맡은 일만 하면 되었으므로 하루에도 많은 양의 베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니 농가에서 부업으로 짜는 베는 가격에서 공방의 베와 애초부터 경쟁이 될 수 없었다. 자연스레 값은 떨어지고 농촌 살림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베뿐만이 아니었다. 종이를 만드는 공방, 가구를 만드는 공방, 그릇을 굽는 가마, 갓을 만드는 공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방에는 장인과 그 밑에 수십 명의 직공들이 함께 모여 많은 물건들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난 북진난장이 열렸을 때 경강상인 강장근이 베를 싼 값으로 마구 풀어놓았던 것도 한양의 공방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러니 베 값이 폭락할 수밖에 없었겠구려.”

“베 뿐이겠소? 시골에서 만들던 모든 수공품들은 이제 끝났소!”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