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지난 2013년 7월 홍콩에서 아주 특별한 경매가 있었다. 물건은 노란추리닝 한 벌로 40년이나 된 아주 낡은 옷이었다. 그런데 무려 1억원이 넘는 금액에 팔렸다. 알고 보니 이 옷은 홍콩 무술계의 영웅인 이소룡(李小龍)이 애지중지 입던 옷이었다. 하루는 기자가 이소룡에게 물었다.

“당신이 중국 무술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러자 이소룡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어려서 남들보다 작고 연약했습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무술영웅이 되고는 싶었지만, 작은 키에 삐쩍 마른 몸매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태라면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내 약점을 알고는 내게 맞는 무술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절권도(截拳道)입니다. 나는 남보다 강할 수 없다면 남보다 빠르면 된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끝없이 절권도를 연습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만 가지 기술을 가진 자가 아니라 오직 한 가지 기술로 만 번 연습한 사람이 무섭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절권도는 기존에 있던 영춘권, 홍가권, 공력권, 복싱, 태권도, 펜싱의 스텝 등을 결합하여 이소룡 자신이 만든 복합 무술이다. 전통 무술의 형식주의를 타파하고 여러 무술의 강점을 채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익히기 위해 이소룡은 하루에도 수백 번 주먹과 발을 내질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이소룡을 무시했다.

“네 맘대로 무술을 만들려고 하냐? 그건 무술이 아니야. 정신 차려라!”

얼마 후 이소룡의 주먹과 발이 누구보다 빠르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실 확인을 해보니 정말 이소룡의 동작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이를 계기로 1971년 첫 영화 ‘당산대형’에 출현하였다. 이때 처음 절권도를 선보였다. 이 무술이 관객들을 사로잡아 이 영화는 홍콩 최대의 흥행을 얻었다. 더불어 이소룡은 자신만의 무술로 방송과 영화에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새로운 무술 영웅이 탄생하자 수많은 관객과 팬들은 환호에 빠져들었다.

두 번째 영화 ‘정무문’에서는 호쾌한 액션뿐만 아니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울음소리 같은 기합, 복잡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표정 연기, 그리고 쌍절곤 액션을 처음 선보여 흥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어 자신의 첫 각본 및 감독 작품인 ‘맹룡과강’을 선보여 입지를 확호하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할리우드와 합작하여 ‘용쟁호투’를 제작하였다. 하지만 영화를 다 찍어 놓은 상태에서 이소룡은 갑작스레 사망하고 말았다. 32살의 무술 영웅의 죽음에 대해 애도와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이소룡이 홍콩 무술영화에 등장한 것은 고작 2년, 시간적으로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16년이나 피나는 수련 기간을 거쳤다. 그의 삶은 절권도라는 하나의 무술로 뿌리를 내려 꽃 피운 것이다.

일이관지(一以貫之)란 하나를 알고 그것으로 연습하고 익혀서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이다. 한 가지로 인생의 승부를 본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한 가지 분야에 뛰어난 사람을 우리는 고수라고 부른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한 가지로 밀고나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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