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 마을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물을 맞는 물탕이 봉우재 아래 골짜기에 있었다. 본래는 유월 보름날인 유두 때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으면 모든 나쁜 기운이 떨어져 나가 집안이 평안하고 농사도 풍년이 된다하여 모두들 거꾸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오티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절벽 위 굴 속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었다. 인근에서는 이 물을 맞으면 온갖 병이 낫고 한 해 동안 무병한다고 소문이 나 유두만 되면 인근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오티 물탕은 입추 여지가 없었다. 충주로 부임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민강 목사도 유두가 다가오자 그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목사는 충주목의 최고 책임자로 관내도 시찰할 겸 유두 물맞이도 할 겸 청풍관아를 돌아볼 심산이었다.

“오티 물을 맞으면 삼 년 누워있던 미수 노인도 벌떡 일어나 십 리를 걷는다고 합니다요. 목사 영감!”

“그렇게 효험이 좋단 말인가?”

“오시는 길에 꼭 저희 집에 들러주시기를 바라옵니다요.”

최풍원이 민강 목사에게 재차 청을 올렸다.

“그리고 목사 영감, 최 행수가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쓰시라고 귀한 물목들을 잔뜩 가지고 왔습니다.”

윤왕구 객주가 은근하게 말했다.

“허허- 얼굴이나 보면 되지, 뭘 그런 것까지…….”

민강 목사가 애써 표정을 감추며 처음으로 최풍원에게 따뜻한 낯빛을 띄웠다.

“약소합니다요.”

최풍원이 머리를 조아리며 허리를 깊숙하게 숙였다.

“이번에 훈련도감에서 특별선 다섯 척을 건조하라는 지시가 충주관아에 내려왔다네.”

민강 목사가 최풍원의 표정을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영감, 최 행수네 북진여각에는 벌목장도 있습니다요.”

윤왕구 객주가 설레발을 치며 최풍원이를 천거했다.

“영감, 제게 맡겨만 주시면 성심을 다해 배를 짓겠습니다요.”

최풍원이 윤왕구 객주의 말을 받아 민강 목사에게 건조권을 달라며 매달렸다.

“그런데 문제가 좀…….”

“문제라야 돈밖에 더 있겠습니까요?”

“그 사람 장사꾼 아니랄까봐 눈치 하나는 귀신이구먼.”

“훈련도감에선 군선 신조를 하라면서 이천 냥도 되지 않는 돈을 내려 보냈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그 돈으론 개삭 비용에도 어림없는 돈 아닌가?”

“염려 마십쇼! 제게 조군 서른 명만 쓰게 해 주십쇼!”

“그건 염려 말게. 오월까지 용산창으로 세곡과 공물도 모두 보냈고, 한동안 조군들도 할 일이 없을 걸세. 그러니 가흥창 감관에게 지시해서 조군들을 착출하도록 해주겠네.”

충주목 관할의 가흥창은 남한강 수로에서는 유일한 강창이었다. 동시에 충청좌도 일대의 세곡을 모아두는 최대의 강창이기도 했다. 원래 가흥창에는 수참선의 정비와 세곡의 관리 및 운송 책임을 맡은 종오품의 관원인 수운판관이 있었다. 그러나 수운판관이 혁파되고 지금은 충주목사가 직접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행정적인 절차와 권한만 충주목사에게 있을 뿐 이미 오래 전부터 조운선을 건조하는 일이나 운반하는 실질적인 일은 재력을 가지고 있는 하급 관리나 상인들이 불하를 받아 해오고 있었다.

최풍원은 조군들을 이용해 지난번 난장 때 강장근이가 버리고 갔던 경강선을 해체해서 개삭을 할 요량이었다. 그 경강선들도 이미 군선으로 쓰다 퇴선한 배들을 해체하여 다시 만들어진 배로 항해가 거의 불가능한 배들이었다. 강장근은 최풍원을 속이기 위해 운항할 수도 없는 배를 강 가운데 띄워놓고 술수를 부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훈련도감에서 쓰는 군선은 조운선이나 경강선보다 규모가 작았기에 북진나루에 있는 십여 척의 경강선을 해체하고 모자라는 자재 일부는 영춘 벌목장의 목재를 보충하면 개삭비용보다도 훨씬 값싸게 전선 다섯 척쯤은 별 어려움 없이 건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흥창 조군들을 공짜로 쓰게 된다면 나라에서 건조비로 내려왔다는 이천 냥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럼 자네가 한번 해보겠는가?”

민강 목사가 최풍원에게 물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뼈를 깎아서라도 해보겠습니다요. 그런데…….”

최풍원이 민강 목사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뭔가?”

“영감, 쇠못을 박아 개삭을 하면 어떨는지요?”

최풍원이 민강 목사의 의향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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