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두 사람은 제대로 혼례를 올리지도 못하고 정화수 한 그릇 받아놓고 부부의 연만 맺었다. 두 사람이 천애고아 처지이기도 했고, 풍원이가 행상을 하며 천지사방을 돌아치던 때라 혼례에 관심을 쏟을 겨를이 없었다. 겨를이 없었다기보다는 아예 관심 자체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온몸으로 겪었던 지긋지긋한 가난의 기억 때문에 그저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한번 집을 떠나면 집안일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서너 달 만에 집에 돌아와도 분옥이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최풍원은 분옥이가 아기를 가진 줄도 몰랐다. 결국 마누라는 혼자 몸을 풀다 산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숙영이만 남겨놓은 채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보연이와 마누라의 죽음이 최풍원의 가슴속에는 평생 대못처럼 박혀 있었다. 그 두 사람의 죽음은 모두 자신이 못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픔은 세월이 흘러도 가슴속에 오롯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숙영이만은 동생 보연이나 마누라 분옥이처럼 불행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종일 소란스럽던 집 안팎이 저녁이 되자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안채 마당에는 아낙들이 남아 뒷설거지를 하고, 바깥 객사 마당에서만 아직도 많은 잔치꾼들이 남아 화톳불을 피워놓은 채 술을 먹으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밤은 점점 깊어져가고 안채 안방에서는 초야를 치를 봉화수와 숙영 낭자가 화촉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이제껏 참으로 외롭게 살아왔소. 이제 성년이 되어 이렇게 당신과 부부의 연을 맺고 보니 꿈만 같소. 모쪼록 내가 부족하더라도 살면서 채워보도록 힘써보겠소. 그러니 색시도 날 좀 도와주시오. 색시가 날 도와준다면 나는 당신을 업고 날개 단 천리마처럼 힘껏 날아볼 작정이오!”

봉화수가 숙영이의 두 손을 마주잡았다.

“저 역시 갓난쟁이로 어머니를 잃고 외롭게 살아왔어요. 그러니 저를 측은지심으로 거두어주시어요. 앞으로 저도 서방님을 돕는 일이라면 뭐라도 할 것이옵니다.”

새색시 숙영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고맙소!”

“그런 말 마시어요. 이제 저는 서방님 아내입니다!”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숙영 낭자가 행복에 찬 어조로 말했다.

“고맙소!”

봉화수가 숙영이의 손을 꼬옥 잡았다.

“……."

숙영이 말없이 봉화수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고마웠소. 내가 그렇게 애처로웠소?”

낮에 대청마루에서 있었던 신랑달아먹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봉화수가 그윽한 눈으로 숙영을 바라보았다.

“…….”

숙영이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배시시 웃었다. 그 바람에 신부가 쓴 화관의 떨잠이 바르르 떨며 화촉의 불빛을 털어냈다. 신부의 웃는 모습에 용기를 얻은 신랑이 숙영의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그러나 봉화수는 곧바로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도무지 신부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신부의 온 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빈틈 하나 없이 꽁꽁 싸여 있었다.

“내참,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당신이 좀 도와주시구려.”

봉화수가 새색시에게 도움을 청했다.

“서방님도 차암…….”

숙영이 살짝 눈을 흘겼다. 그러자 봉화수는 더욱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기만 했다. 그때 문 바깥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새신랑! 화관 먼저 벗기고……, 용잠에 건 도투락댕기를 풀어!”

누군가가 문 밖에서 알려주었다. 봉화수가 바깥에서 시키는 대로 족두리를 벗겼다. 그리고 비녀를 뽑자 숙영의 흑채 같은 머리칼이 풀어지며 촛불에 반짝반짝 빛났다. 그 윤기로움에 취해 잠시 봉화수가 정신이 어찔했다.

“신랑이 영 숙맥이구먼. 수대를 풀고 원삼을 벗기고…….”

밖에서 알려주는 소리에 따라 봉화수가 신부 가슴을 두르고 있던 수대부터 풀었다. 그러자 원삼이 벗겨지고 치마와 무지기 옷이 나왔다. 거기부터는 그런대로 수월했다. 그저 묶여있는 끈만 풀면 한 꺼풀씩 옷이 벗겨졌다. 문 밖의 구경꾼들이 방안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일일이 살펴보며 속살거렸다. 신부의 옷이 벗겨질 때마다 구경꾼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숨을 죽였다. 신부 숙영이가 신랑 봉화수의 손길을 피하며 가슴을 옷깃으로 여몄다.

“왜 그러시오?”

영문을 모르고 신랑이 물었다.

“서방님 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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