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뭘로 우리 동네 색시를 훔쳐간 값을 낼 테냐?”

“값은 무슨 값이오? 이제 데려가면 평생 호강만 시켜줄 텐데 외려 내가 돈을 받아야 옳지 않소?”

“신랑이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들었구먼!”

“알아먹을 때까지 매우 쳐라!”

이번에는 객주들과 동몽회원들이 돌아가며 신랑 발바닥을 내리쳤다. 봉화수의 과장된 비명 소리가 대청마루와 신부가 있는 안방까지 퍼졌다. 신부는 애가 달았지만 어찌할 수 없어 그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아! 초야도 못 치루고 과부 만들 일 있는가? 그만들 혀!”

음전 할매가 안방에서 나오며 방망이를 빼앗았다.

“할매는 모처럼만에 맛난 음식이나 드시지 뭣 땜시 나와 참견이라우?”

“장모도 없는 집에 나라도 나와야지. 그래, 뭣들이 필요해서 그러는가?”

“우린 장모는 필요 없고 신랑이 내는 술이나 얻어 먹을랍니다!”

“이보게 처녀 도둑, 용서해 줄 테니 고기는 얼마나 내겠는가?”

객주들이 신랑에게 물었다.

“모기 다리만큼!”

신랑이 자신을 달던 객주들과 동몽회원들을 놀려먹고 있었다.

“으흠, 모기 다리라. 그럼 술은 몇 동이나 내겠는가?”

“조금만 기다리게. 누룩 내려고 지금 밀밭에 갔네!”

다시 한 번 신랑이 사람들을 놀렸다.

“안되겠다. 설맞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니 제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매우 쳐라!”

사람들이 달려들어 신랑의 버선을 벗기고 맨 발바닥을 다듬이 방망이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시늉을 했다. 신랑이 죽는 소리를 냈다. 구경꾼들이 킥킥거리며 숨죽여 웃었다.

“그만들 하세요!”

그때 안방에서 신부가 황급하게 뛰어나오며 매질하던 객주들을 말렸다.

“아니, 아씨는 어쩌다 저런 숭악한 신랑을 만나셨대요?”

객주들이 신부를 놀렸다.

“제발 그만 때리세요!”

신부는 안타까운 마음에 거의 울상이 되었다.

“아씨는 저런 도둑 신랑 뭐가 좋다고 두둔하시우? 얘들아 더 쳐라!”

신부를 놀려먹느라 매질을 하던 사람들이 더욱 힘껏 치는 시늉을 하고, 신랑은 더욱 크게 비명을 질렀다.

“그만들 하세요!”

신부가 달려들어 다듬이 방망이를 빼앗았다. 구경꾼들이 박수를 쳐대며 웃었다.

“맨입으로는 용서를 못하겠으니 어찌 하시겠소?”

“유모, 속히 술상 좀 봐오세요!”

“얘들아, 아씨가 저리 사정을 하니 신랑을 풀어줍시다!”

“그러세, 아씨 그만 몸 달게 하고, 아씨가 내는 술이나 먹세 그려!”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신랑이 마루로 내려졌다. 때를 맞춰 대청마루로 떡 벌어지게 차려진 주안상이 열을 지어 들어왔다.

“화수야, 넌 역시 장가 잘 들었다. 저렇게 편들어 주는 신부가 있으니 너도 평생 아씨를 신주 모시듯 해라!”

“알았소!”

집이 떠나가라 신랑이 대답했다.

사람들은 인근에서 제일가는 거상의 무남독녀 외동딸을 잡았으니 호박을 넝쿨째 잡았다고 모두들 봉화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홀로 외롭게 자라온 터에 숙영이는 북적북적 형제가 많은 집안을 꿈궜었다. 그래서 혈혈단신인 봉화수가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봉화수에 대한 아버지 최풍원의 바위 같은 믿음을 깰 수가 없었다.

“우리 집안에는 그런 사람이 들어와야 하느니라. 화수는 야망도 있고 자상하기도 하다. 여자는 다른 건 필요 없다. 그저 자기 한 몸만 아껴주는 사람만 있으면 그게 최고다. 봉 서방은 그런 사람이다. 모쪼록 너는 봉 서방 뜻을 거스르지 말고 잘 따라야 할 것이다.”

혼례를 앞둔 며칠 전, 최풍원은 딸 숙영을 불러 다짐 받듯 당부했다.

최풍원은 안채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불현듯 죽은 마누라가 떠올랐다. 오늘 같은 날 안채에 주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미어졌다.

최풍원은 숙영이 생모에게 큰 죄를 지었다. 숙영이에게는 물론 자신을 돌봐주었던 연풍 주막집 아주머니에게도 최풍원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말았다. 숙영이 생모는 풍원이가 연풍관아에서 어머니를 잃고 보연이와 함께 신세를 졌던 주막집 아주머니의 딸 분옥이었다. 최풍원이 분옥이와 부부가 된 것은 스물 넷 되었던 해였다. 두 사람 모두 혼기가 꽉 차있었다. 풍원이는 연풍을 지나는 길이면 어려웠던 시절 보살펴준 은공을 잊지 못해 두 모녀가 살던 신풍리에 종종 들르곤 했다. 그 무렵 들른 주막집 아주머니는 깊은 병으로 다시는 회생할 가망이 없었다. 아주머니는 풍원이에게 분옥이를 부탁했다. 풍원이는 두 말 않고 분옥이를 받아들였다. 그것이 아주머니 은공에 대해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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