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신랑 신부의 맞절이 끝나고 두 사람이 교배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신부를 돕던 항아가 술단지와 잔을 들고 와 술을 부어 신랑에게 권했다. 봉화수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신랑이 화끈하구만. 밤일도 저래 끝내면 안 되는 데.”

또 한번 구경꾼들이 두리기로 웃었다.

이번에는 박잔으로 잔을 바꿔 신랑이 마신 다음 항아가 신부의 입술에 살짝 가져다 대기만 했다. 합환주가 끝나자 혼례는 모두 끝났다. 대반들이 초례상 위에 묶어두었던 장닭과 암탉을 풀어 지붕 높이 날렸다. 두 닭이 어울려 푸드득거리며 파란 하늘을 날았다. 깃털이 초례청 위로 새털구름처럼 퍼졌다.

대례가 끝나자 북진여각 안팎이 북새통이었다. 혼례를 치렀던 큰마당에도 잔치 구경을 끝낸 마을사람들이 두리기로 모여앉아 음식을 먹느라 사방이 시끄럽고, 안채 마당에서는 신랑이 친구들을 대접하는 동상례가 벌어지고 있었다. 봉화수 또한 최풍원처럼 조실부모한 후 객지를 떠돌아다닌 탓에 친구라고 해야 북진여각에서 장사를 하며 만난 사람들뿐이었다. 오늘 혼례에도 친구를 대신한 사람들은 객주들과 동몽회 회원들이었다. 안채 안방 아랫목에는 원삼에 족두리를 쓴 신부가 다소곳하게 앉아있고, 이를 구경하느라 주름이 지글지글한 동네 안늙은이들과 아낙들이 방안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여보게들! 신랑 한번 달아야지?”

“말하면 뭐하나. 공들여 키워놓은 남의 딸자식을 통새미로 먹으려는 날도둑놈을 그냥 내버려두면 동네 풍습이 무너져!”

“다른 동네 총각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다신 못된 도둑질 못하게 단단히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자고!”

안채 마당에서 술을 마시던 객주들과 동몽회원들이 신랑을 달자고 이구동성으로 들고 일어섰다.

“이공저공 갖은 공 들여 이제껏 가꿔놓았는 데 느닷없이 한입에 홀딱 집어삼킨 저런 염치없는 인간은 혼을 내야 한다구!“

“아암, 혼을 내야하구말구!”

“신랑을 단다네!”

동몽회원들이 사방을 향해 소리쳤다.

도중의 객주들과 동몽회원들이 이방 저방을 돌아다니며 술대접을 하는 신랑을 잡으러 우르르 방으로 들어가고, 동네 사람들은 모처럼만에 생긴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줄줄이 안채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한 무리는 어른 허리통보다도 굵은 대청마루 대들보에 베 필을 집어던져 걸쳐 매고, 한 무리는 여기저기를 뒤져 다듬이 방망이·홍두깨·장작개비·지게 작대기에 노인들이 세워놓은 지팡이까지 눈에 보이는 대로 들고 대청마루로 몰려들었다.

“아주, 새신랑을 잡을 모양이네.”

“저러다 첫날밤도 못 치루는 거 아녀?”

“그러게 말여. 오늘 밤 신부를 죽이기 전에 신랑이 낮부터 죽게 생겼네.”

마당에서 이를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히히덕거렸다.

이윽고 곱게 차려입은 새신랑 봉화수가 대청마루로 끌려나왔다.

“우리 동네 처녀를 훔쳐 간 도둑놈! 무엇으로 그 죄를 갚을테냐?”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법, 어째 나만 도둑이라 덮어 씌우시오?”

“어허, 이런 철면피를 봤나. 먼저 추파를 던졌으니 요조숙녀인 숙영 낭자가 마음에 병이 났지 처녀가 혼자서 애를 배냐?”

“아니! 신부가 애를 가졌다네.”

“아이고, 이 숙맥아! 하는 소리지.”

봉당 아래 마당에서 신랑 다는 것을 구경하던 아낙들이 수군거렸다.

“봄이 오면 나무에도 저절로 물이 오르는 법, 때가 된 처녀총각이 눈길을 마주 치고도 불길이 솟지 않는다면 맛간 상늙은이 아니겠소?”

“신랑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입만 살았구나!”

“그러게 말여. 요새는 도둑놈이 할 말은 더 많다니까.”

“말로는 안 되겠구먼. 매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먼.”

“스스로 죄를 알 때까지 매우 쳐라!”

신랑을 달아먹던 객주와 동몽회원들이 한 머리는 대들보에 걸린 베 끈을 당겨 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또 한 머리는 달려들어 방망이를 치켜들었다.

“아구구구! 아구구구!”

대청마루에 거꾸로 매달린 신랑이 매는 닿지도 않았는데 엉그럭부터 쳤다.

“이런 숭악한 도둑 좀 보게. 치지도 않았는데 생떼부터 쓰는구먼!”

“정말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먼. 얘들아!”

동몽회원들이 방망이로 신랑의 버선발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신랑이 거꾸로 매달린 채 몸을 비틀며 죽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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