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발구를 부리는 것도 배보다 수월했다. 배는 급류나 여울에 휩쓸리면 아무리 날랜 도사공도 사력을 다해야만 겨우 벗어날 수 있었지만, 얼음판 위를 달리는 발구는 앞에 달린 키만 조정하면 오히려 더 빨리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영춘 용진나루를 출발한 발구는 단양 하진나루에서 남은 짐을 싣고도 충주 꽃바위 나루까지 저녁 새참 전에 도착했으니 해동갑도 걸리지 않은 셈이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배로도 이틀은 족히 걸리는 거리이고, 육로로는 최소한 너댓새는 걸릴 거리를 하루도 걸리지 않고 왔으니 귀신도 놀랄 일이었다. 더구나 이백 섬이나 되는 메밀가루를 하루에 옮겼다고 하면 삼척동자도 믿지 않을 터였다. 풍원이는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꽃바위 나루에서부터 윤 객주 상전이 있는 충주 읍성까지는 마지막재를 넘어 십여 리에 불과했다. 여기부터는 등짐으로 옮기더라도 반나절 거리에 불과했다. 

“자네 참 대단하이!”

윤 객주가 풍원이의 기발한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궁하니 통하더이다.”

“그런데 풍원이, 내 청 하나만 들어주게!”

풍원이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던 윤 객주가 갑자기 부탁을 해왔다.

“제가 받은 은혜가 얼만데, 어르신 청을 뿌리치면 짐승과 매한가지지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그 발구라는 것으로 목도에 있는 세곡 좀 여기까지 옮겨주게나?"

“세곡이라니요?” 

“지난 가을에 충주관아로부터 따낸 괴산 세곡 운송권인데 목도 상유창과 하유창에 오 백 섬이 쌓여 있네. 내년 사월까지 한양 경창으로 옮겨야 하는 데 이러다간 시일을 넘겨 위약한 벌을 받게 생겼네.”

세곡은 백성들이 나라에 내는 세금으로 가을철 추수가 끝나면 물길이 닿는 마을에 모아두었다가 이듬해 사월까지 한양의 경창에 입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본래 충청좌도 일대의 세곡은 나라에서 직접 관장했다. 충주 가흥창은 남한강 최대의 수참이었다. 가을철 추수가 끝나면 일대의 모든 세곡을 가흥창까지 옮겨두었다가 이듬해 봄 강물이 풀리면 수참의 조운선으로 수졸들이 운반을 담당했었다. 그러던 것이 수참의 기능이 점점 약화되어 이제는 그 운반을 사선인 경강선을 가지고 있는 상인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경강선은 대선으로 물길이 험하거나 수량이 적은 지류는 운행할 수가 없었다. 그런 곳은 관아에서 지토선을 가지고 있는 지방 객주들에게 불하하여 큰 물길이 닿는 수참까지 옮기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많은 재산과 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관아와 인맥이 닿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윤 객주도 어렵사리 충주관아로부터 운송권을 따냈으나 남한강 지류인 달천 상류의 목도에 수집해 놓은 세곡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 것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세곡은 이듬해 사월까지 한양의 경창에 반드시 입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만약 그 기일을 어기면 나라로부터 큰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윤 객주로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르신께서 장사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도 하십니까?”

“장사꾼이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더구나 세곡 운반은 운송 이문도 좋고 이 일로 인해 관아에서 밀어주는 일도 많단다. 그런데…….”

윤 객주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르신, 그간 은혜를 생각한다면 뭔들 하지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풍원이는 영춘 심봉수와 맺은 약조가 떠올라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는 전후 사정을 윤 객주에게 말했다.

“풍원아, 이번 일만 해준다면 충주관아에 다리를 놔 그 친구에게 영춘 목재 벌채권을 따주겠다고 하면 안 되겠나? 그리고 자네에게는 운송료로 쌀 스무 섬을 줌세!”

윤 객주는 사정이 워낙 다급한지라 풍원에게 호조건을 제시했다. 쌀이 스무 섬이면 상머슴이 오륙년은 남의 집살이를 해야 모을 수 있는 큰돈이었다. 이번에 만든 발구 값과 운반비로 줄 일꾼들 품삯을 모두 제하고도 남는 돈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돈이 발구 때문에 가외로 생기게 되었다. 푼돈도 아닌 큰돈에 욕심이 생겼지만 심봉수와의 약속이 자꾸 떠올라 선뜻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영춘과 충주와의 거리에 비하면 반절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쌀이 오백 섬이나 되니 최소한 세 번은 왕복을 해야 했다. 그러면 사흘은 족히 걸릴 일이었다. 영춘 심봉수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빠듯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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