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게 뭔 소리요?”

풍원이는 자신 때문에 벌목장 일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당신이 우리 벌목장에서 일 할 만한 일꾼들을 몽땅 추려갔는데 일이 되겠수? 또 당신이 사람들을 꼬드겨 품삯을 잔뜩 올려놨는 데 힘든 벌목일을 누가 하려 하겠소? 타관 사람들은 필요할 때마다 품삯을 올려서 쓰고 버리면 그만이지만, 평생 여기 이 바닥에 살아야 하는 토박이들은 당신들이 잔뜩 넣어놓은 허풍선을 가라앉힐 때까지는 얼마나 부대껴야 하는지 알기나 하소!”

심봉수 이야기에는 한 치도 어긋남이 없었다.

영춘은 충청좌도에서도 가장 깊숙한 강 최상류의 내륙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동쪽은 영월·정선·평창 등 동해로, 서쪽은 죽령·점촌으로, 남쪽은 영주·순흥·부석 쪽으로, 북쪽으로는 제천·원주로 직통했다. 영춘은 현으로 향시가 정기적으로 열렸지만 소금배나 짐배가 물산들을 풀어놓는 곳은 그곳과는 좀 떨어진 용진나루였다. 각종 물산들은 이곳 용진나루에서 등짐장수나 봇짐장수들에 의해 강원도와 경상도 땅으로 넘어갔다. 특히 남한강이 고을의 중앙부를 북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흘러가며 강원도 산간지역에서 벌채된 목재들이 모이는 집산지였다. 영월의 동강과 평창의 서강을 타고 내려온 작은 뗏목들이 모아져 다시 한양으로 가는 큰 뗏목으로 묶여지는 곳이 영춘의 용진나루였다. 이런 목재를 다루는 일은 대체로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늦가을이나 겨울이 시작되는 무렵에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낙엽이 지고 나무 전체에 올라있던 물이 뿌리로 내려가야만 나무 무게도 가벼워지고, 여름내 우거졌던 수풀이 다 죽어버린 겨울이 되어야만 시야도 좋고 벌목꾼들이 활동하기 수월해 깊은 산중에서 벌채된 나무를 산 아래로 옮기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목상들에게는 이 시기가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풍원이가 심봉수의 벌목장에서 인부들을 빼왔으니 그가 열불이 난 것은 당연했다.

“미안 하외다. 내가 하 다급했던 터라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소. 그래, 내가 어찌했으면 좋겠소?”

풍원이가 진심으로 사과하며 심봉수에게 물었다.

“일꾼들을 모두 되돌려 주시오!”

“그건 힘들겠소!”

“그럼 어쩌겠다는 거요?”

“내 사정도 워낙에 급한지라, 우선 내 편리부터 봐주면 안 되겠소?”

“지금 당장 일손이 없어 벌목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무신 한유한 소리요?”

“내 계산으로는 충주까지 내려가는 데 이틀이나 사흘, 그리고 올라오는 데 이틀쯤 걸릴 테니 넉넉잡고 이레만 시간을 주시게. 그러면 내가 우리 동몽회 아이들을 데리고 와 심 형네 벌목일이 끝날 때까지 도와주겠소. 그렇게 좀 해줄 수 없겠소?”

풍원이가 간절하게 부탁했다.

“좋소! 당신 말을 믿고 그렇게 하겠소!”

심봉수가 풍원이 얼굴 표정을 유심히 살피더니 두 말 없이 승낙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강물이 꽁꽁 얼어붙고 충주를 향해 발구가 떠나는 날이 되었다. 영춘나루 강가에는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춘 사람들은 발구가 떠나는 광경을 보려고 모두들 강가로 나와 지켜보고 있었다. 강가 얼음판 위에는 모가지를 길게 뺀 듯한 거북이 형상을 한 발구들이 열을 지어 있었다. 우마차보다도 크고 넓적하게 생긴 열 대의 발구가 짐을 잔뜩 실은 모양이 거북이 여러 마리가 강물을 향해 줄지어가는 모습과 흡사했다. 발구 앞에는 배를 조정하는 도사공처럼 한 사람이 앉아 발로 키를 잡고, 뒤꽁무니에는 배의 조사공처럼 두 사람이 창처럼 생긴 상앗대를 들고 서 있었다.

“우마도 없이 발구를 뭐가 끌고 간다나?”

구경나온 사람들은 모두들 미친 짓이라며 혀를 찼다.

“출발하자!”

풍원이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뾰쪽한 상앗대로 얼음판을 힘차게 찍었다. 실려 있는 짐 무게 때문인지 발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상앗대를 든 두 사람이 연달아 얼음판을 찍으며 밀자 발구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점점 속도가 붙더니 발구는 쏜살같이 강 하류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발구는 순식간에 구경을 하던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음판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발구는 천리마보다도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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