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러니까 어르신께 부탁하는 게 아닙니까?”

풍원이는 우 목수에게 산골에서 쓰는 발구보다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소가 끌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밀고 갈 것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발구 크기는 열 섬에서 열다섯 섬 정도를 실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을 주문했다. 우 목수는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풍원이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평생 나무만 만져온 우 목수가 맡아주기만 한다면 간단한 발구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믿었다. 풍원이는 매일처럼 우 목수 선창에 나가 발구 만드는 일을 도왔다. 나무로 발구를 만드는 것은 우 목수로서는 누운 소 올라타기보다 쉬웠다. 그러나 역시 방향타와 제동장치를 만드는 일은 우 목수도 막막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 목수가 풍원이를 들뜬 목소리로 불렀다.

“이봐, 풍원이! 내가 언뜻 생각해본 것인데 발구 앞에 앉은뱅이 썰매처럼 작은 썰매를 하나 덧붙이면 어떨까?”

“어르신 좋은 생각이십니다. 당장 만들어 보시지요!”

앉은뱅이 썰매는 아이들이 얼음판 위에서 타는 일반적인 썰매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보통은 아이들이 썰매 위에 쪼그리고 앉아 얼음을 지쳤지만, 앉은뱅이 썰매는 앉아서 타는 것이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썰매 앞에는 나비 모양의 작은 외날 썰매가 하나 더 붙어있어 발을 올려놓고 이 발을 이용하여 좌우로 자유롭게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설 때는 앞 썰매의 머리를 들어 외날로 얼음을 찍어 정지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발구에 비해 앉은뱅이 썰매는 훨씬 작았지만 원리를 잘 이용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생각이 서자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 몇 번의 뜯고 맞추기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얼음판에서 다닐 수 있는 발구를 완성했다. 얼음과 맞닿는 나무 날에는 강도와 마찰력을 줄이기 위해 철선을 깔았다. 그리고 발구 앞에는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작은 썰매를 덧붙이고, 뒤에는 발구를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로 단단한 박달나무에 다섯 개의 쇠 징을 박아 얼음을 찍을 수 있도록 달았다. 평소 달릴 때는 들려 있다가 뒤에서 썰매를 미는 사람이 발판에 올라서면 징이 얼음에 박히며 속도가 줄고 멈추도록 했다.

이제는 얼음판에서 발구를 시험해보고, 끌고 갈 사람들을 숙달시키는 일만 남았다. 풍원이는 연통을 넣어 북진에 내려가 있던 동몽회 대방 도식이와 회원들을 영춘으로 올라오도록 했다. 그러나 동몽회원만 가지고는 인원이 턱없이 모자랐다. 발구 한 대에는 앞에서 조정하는 사람과 뒤에서 출발할 때 밀고, 설 때 제동을 하는 사람 등 모두 세 사람이 필요했다. 발구가 모두 열 대이니 삼십 명은 필요했다. 동몽회 회원만으로는 발구를 몰 인원이 턱없이 모자랐다.

“형, 사람을 어디서 구하지?”

풍원이가 동몽회원들을 데리고 올라온 장석이에게 물었다.

“그래도 강 지리를 잘 아는 뱃꾼이나 뗏목꾼들이 좋지 않을까? 겨울이라 일도 없어 구하기도 수월할 테고.”

“얼음판에서 발구를 모는 일인데 뱃꾼들은 좀 그렇지 않을까?”

장석이 말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풍원이 생각은 좀 달랐다. 평생 배를 몰며 물에서 산 뱃꾼들이 강 요리에도 환하고 노련함은 있겠지만 빙판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발구를 다루려면 장년보다는 힘 좋고 몸이 잽싼 젊은이가 나을 것 같았다.

“형, 인근을 수소문해서 젊은 사람들을 알아봐.”

풍원이는 장석이를 통해 발구를 몰 젊은이들을 물색해 보도록 했다.

며칠 뒤 장석이는 인근 마을 젊은 사람들은 거개 벌목장으로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왔다. 풍원이는 곧바로 벌목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벌목장보다 후한 품삯을 약속하고 날래 보이는 젊은이들만 뽑아 내려왔다. 그리고는 이들에게 얼어붙은 샛강에서 발구 모는 기술을 습득시켰다. 샛강은 이미 얼어붙었지만 본류는 짐을 잔뜩 실은 발구가 달려가기에는 아직 얼음이 얇았다. 풍원이는 강물이 꽝꽝 얼어붙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겨울이 점점 깊어가고 있을 무렵, 어떤 사람이 쌍례네 주막집으로 풍원이를 찾아왔다.

“나는 영춘 목상 심봉수요!”

자신을 심봉수라고 밝힌 사람은 풍원이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풍원이도 장삿길에 영춘을 무수히 오가며 장터에서 서너 번 본 일이 있는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요?”

“당신 때문에 벌목장 일이 돌아가지 않는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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