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러나 풍원이 계획과 달리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풍원이가 매입한 메밀의 양이 워낙 많아 계획한 시간과는 달리 자꾸만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풍원이의 처음 생각은 껍데기 치레가 많은 메밀을 빻아서 껍질을 버리면 부피가 줄어들어 운임도 줄이고, 또 가공한 메밀가루는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리고 그것을 강물이 얼어 뱃길이 끊어지기 전에 옮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양의 메밀을 가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가을걷이에는 괭이 손도 빌린다’는 바쁜 철이고 보니 아무리 흉년이라고 해도 손이 달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다보니 차일피일 늦어져 뱃길도 끊겼다. 그렇다고 마냥 봄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구황작물이라는 것이 동절기와 이른 봄에 꼭 필요한 식량이었다. 이 시기를 맞추려면 최소한 충주까지는 옮겨놓아야만 했다. 충주는 충청좌도에서는 제일 큰 고을이라 소비지로서도 그러했지만, 일찍 뱃길이 열리는 터라 춘궁기에 맞춰 한양으로 옮겨 소비를 시킬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그것은 옮기는 방법이었다. 영춘에서 충주까지는 육로로는 이백오십 여 리, 물길로는 이백 리였다. 배로 옮기면 지토선 서너척 이면 가능했지만 이미 강물이 얼기 시작해 뱃길은 불가능했다. 결국 육로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육로도 만만치가 않았다. 육로로 충주까지 가는 길은 수없이 많은 고개를 넘어야 했기에 짐을 지고 걷기에는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겨울 산길을 걸어야했기에 실제로 걸리는 시간은 평상시 곱절은 들 것이 뻔했다. 또 등짐으로 옮긴다 해도 일백여 명의 장정이 필요했고, 우마를 이용하여 마리당 넉 섬을 싣는다 해도 오십여 두가 필요했다. 이런 시골에서 이백 명의 장정이나 오십여 두의 소를 구할 수도 없지만, 설령 구한다고 해도 며칠이 걸릴지 몰라 운반비로 몽땅 쏟아 부어야 할 형편이었다. 풍원이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때 풍원이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발구였다. 예전 망덕봉 수리골에서 나무장사를 다닐 때 새재고개에서 황소가 끌고 가던 발구가 떠올랐다.

“그래, 그거여! 썰매를 만드는 거여!”

발구는 원래 소나 말을 이용하여 곡물을 운반하는 겨울철 도구였다. 주로 눈이 많이 쌓이는 산간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는 데 쓰는 썰매의 일종이었다. 풍원이는 발구를 만들면 얼음판 위에서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이 얼어붙으면 얼음판이 끊이지 않고 충주까지 이어져 발구를 잘만 개량하면 고갯길에서뿐만 아니라 강위의 얼음판에서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섰다. 풍원이는 그 길로 영춘 용진나루의 목수 우복술을 찾아갔다. 우복술은 평생 배를 만들며 살아온 목수로 예순을 바라보는 노인이었다.

“어르신, 발구 열 대만 만들어 주시오.”

“발구는 뭐하려고 한꺼번에 그리 많이 만드시나?”

“메밀을 충주까지 옮기려고 그럽니다.”

“지 정신인가? 수레도 아니고 발구를 끌고 충주까정?”

우복술 목수가 놀라서 풍원이에게 되물었다. 발구는 먼 거리를 가는 것이 아니라 소나 말에게 끌려 눈 쌓인 고갯길을 넘거나 근방의 가까운 거리의 물건을 옮기는 데 사용하는 운반도구였다. 그런데 발구를 끌고 충주까지 간다니 우 목수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강으로 갈 겁니다.”

“강으루 간다구?”

발구를 끌고 강으로 간다는 풍원이의 말에 우 목수가 더욱 놀랐다.

“얼음판 위를 썰매처럼 달릴 수 있게 만들어 주시오!”

“뭐라고, 얼음판 위로 간다고! 얼음판 위를 무거운 메밀가루를 싣고 가면 내려갈수록 점점 속도가 붙어 걷잡을 수가 없을 텐데 방향은 어떻게 잡고, 또 멈추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여? 너 미친 것 아니냐?”

우 목수 말이 맞았다. 어쨌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정한 이치였다. 그렇다면 얼음판 또한 하류를 향해 비탈져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면 발구는 점점 빨라질 것이었고,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제동장치도 필요했다. 그리고 반들반들한 얼음판에 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곳곳에 솟아있는 바위나 돌 같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어 이를 피하려면 방향타는 필수적이었다. 미끄러운 얼음판 위를 달리려면 이 두 가지는 꼭 필요했지만 지금껏 발구를 강에서 사용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지금까지 발구는 소가 방향을 잡고 소의 힘으로 멈추었기 때문에 제동장치나 방향타는 필요가 없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