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풍원아, 천지가 미물인데 미물을 뭐할라고 산디야?”

장석이는 걱정이 되었다. 메밀은 영춘 뿐 아니라 가뭄을 탄 강 상류의 모든 산간지역이 온통 메밀 천지였다. 그러니 장석이가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형, 내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마!”

장석이가 불안해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풍원이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영춘에 올라온 풍원이와 장석이는 나루터 주막에 여장을 풀고 동몽회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메밀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풍원이와 장석이가 골골이 마을마다 찾아다니며 메밀을 흥정해 놓으면 동몽회원들은 메밀 값으로 치룰 쌀과 소금, 그리고 잡화들을 날라다주고 사놓은 메밀들을 영춘 나루터 주막집으로 옮겨갔다. 달포가 넘도록 풍원이는 영춘 곳곳을 샅샅이 훑으며 닥치는 대로 메밀을 사들였다. 주막집 마당에는 야적된 메밀 섬이 무지로 늘어만 갔다.

“저걸 북진까지 어떻게 다 나를 테냐?”

장석이 걱정에도 불구하고 풍원이는 계속해서 사들이기만 했다. 영춘의 메밀을 어느 정도 사들이자 이번에는 단양으로 내려가 메밀을 사들였다. 그렇게 가을 내내 사들인 메밀 더미가 단양과 영춘 주막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제 강 상류의 단양과 영춘 근방에서는 식구들이 겨울을 넘기며 가용할 약간의 메밀 외에는 주변에서 메밀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장석이는 이제 저 많은 메밀을 어떻게 옮겨야할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주모, 마을에 소문 좀 내주시오!”

풍원이가 가으내 기거를 하던 주막집 주모 쌍례네에게 말했다.

“뭘 말이유?”

“저 메밀 한 섬을 타오면 품삯으로 한 말씩 준다고 해 주시오!”

“그렇게나 많이?”

쌍례네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일을 며칠씩 해주고도 잡곡 바가지나 겨우 얻는 것이 고작인 동네에서 방아를 찧어주는 품삯으로 메밀 한 말을 준다고 하니 쌍례네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섭섭잖게 해줄 테니 주모가 메밀 섬 들고나는 것을 관리 좀 해주시겠수?”

풍원이는 메밀 방아 찧는 일을 쌍례네한테 모두 맡겨버렸다. 아무래도 방아일 같은 것은 세밀한 여자들이 관리하는 것이 제격일 듯해서였다. 쌍례네도 겨울이 오면 뱃길도 끊기고 주막집 객도 끊겨 할 일도 없어질 터에 반색을 했다.

쌍례네 주막집에는 메밀을 져가는 사내들과 찧은 가루를 가져오는 아낙들로 매일같이 혼잡했다.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메밀 더미가 전부 가루로 타지자 부피는 반의반도 되지 않게 줄어들었다. 그래도 메밀가루는 일백 여 섬이 넘었다. 단양 하진나루의 메밀가루를 합치면 족히 이백 섬이 넘었다. 거기에다 북진 상전에서 가져왔던 물건들과 맞바꿔 놓은 각종 약초들과 특산품들도 십여 바리는 족히 넘었다. 풍원이는 이 물산들을 충주 윤 객주네 상전으로 옮기기로 했다. 어차피 이렇게 많은 물산을 북진으로 나른다 해도 청풍에서는 소비할 수 없는 물량이었다. 경강상인들을 상대하는 윤 객주라면 이 정도 물량은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을 듯싶었다.

그러나 풍원이 계획과 달리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풍원이가 매입한 메밀의 양이 워낙 많아 계획한 시간과는 달리 자꾸만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풍원이의 처음 생각은 껍데기 치레가 많은 메밀을 빻아서 껍질을 버리면 부피가 줄어들어 운임도 줄이고, 또 가공한 메밀가루는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리고 그것을 강물이 얼어 뱃길이 끊어지기 전에 옮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양의 메밀을 가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가을걷이에는 괭이 손도 빌린다’는 바쁜 철이고 보니 아무리 흉년이라고 해도 손이 달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다보니 차일피일 늦어져 뱃길도 끊겼다. 그렇다고 마냥 봄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구황작물이라는 것이 동절기와 이른 봄에 꼭 필요한 식량이었다. 이 시기를 맞추려면 최소한 충주까지는 옮겨놓아야만 했다. 충주는 충청좌도에서는 제일 큰 고을이라 소비지로서도 그러했지만, 일찍 뱃길이 열리는 터라 춘궁기에 맞춰 한양으로 옮겨 소비를 시킬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