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김주태 땅을 부치는 소작인들은 이미 마음이 떠나고 있었다. 마음이 없으니 소출도 그 마음만큼 줄어버렸다. 소작인들이 성심을 다하지 않으니 소출은 흉년작에도 미치지 못했다. 논바닥에 굴러다니는 이삭만 알뜰하게 거둬도 소출이 배는 늘어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소작인들은 자포자기해서 건성 건성이었다. 김주태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소작인들은 더 이상 따르지 않았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혼자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제 아무리 뛰고 나는 놈이라도 남이 도와주지 않으면 제 혼자서는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었다. 소작인들이 찍소리 못하고 일을 해줄 때는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다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작인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하자 김주태네 농사는 금방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당장 올 가을 추수부터 김주태는 제 때 나락을 거둬들이지 못했다. 최풍원네 논을 부치는 소작인들은 이미 타작을 마치고 볏섬을 집안으로 다 끌어들였는데도 벼 벨 사람을 구하지 못한 김주태네 논에는 벼가 태반이나 그대로 서있었다. 결국 김주태는 발만 동동 구르다 흉년보다도 못한 곡물을 거뒀다. 그마저 이현로 전임의 부사와 짜고 몰래 빼내온 관곡부터 갚고 나니 빈털터리가 되었다. 김주태가 눈에 불을 켜고 빌려준 장리를 받기위해 소작인들을 닦달했지만 그들 역시 더 내놓을 것도 없었다. 있다한들 딴 마음을 먹고 있으니 순순히 내놓을 리 없었다. 김주태네 땅을 부치던 소작인들은 최풍원네 소작인들을 보고 어떻게 하든 그쪽으로 붙어볼 요량을 했다. 추수가 끝나자 최풍원을 찾아와 반 마지기라도 좋으니 땅 좀 부치게 해달라고 찾아오는 김주태네 소작농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최풍원은 청풍읍내 소작인들을 모두 받아들일만한 땅이 없었다. 땅은 한정돼 있는데 소작인들은 땅을 부치겠다고 자꾸만 찾아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대행수 어르신! 이모작을 해보시지요. 그러면 쉰 마지기 땅이라도 지금보다 배는 더 소작인들을 구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요?”

땅을 부치게 해달라고 왔다가 고개를 타루매고 돌아가는 소작인들을 보니 가슴이 짠해진 봉화수가 최풍원에게 말했다.

“또 그 소리냐!”

최풍원이 듣기도 싫다는 듯 봉화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렸다.

“어차피 내년 봄까지는 노는 땅입니다. 저한테 맡겨 보시지요?”

봉화수가 고집을 꺾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노는 땅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농사를 지려면 씨앗이 들어가지 않겠느냐? 논바닥에 씨앗을 뿌려봤자 분명코 한겨울에 꽁꽁 얼어 다 죽고 말 터인, 왜 그런 허튼 짓을 한단 말이냐? 차라리 그 나락을 배고픈 소작인들에게 나눠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

최풍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쉰 마지기 논에 파종을 하려면 넉넉하게 잡아 보리 열 섬은 필요했다. 보리는 벼와 달라 그냥 밭에 훌훌 뿌리는 산파를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모를 키워 논에 내는 벼보다는 씨앗 량이 많이 들어갔다. 벼보다는 조밀하게 자라나니 얼어 죽지 않고 뿌리를 잘 내려 농사만 잘 된다면 당연히 쌀보다 소출이 많았다. 열 섬 씨앗을 해서 소출이 많으면 백 섬까지는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농사가 잘 됐을 때 이야기였다. 최풍원의 생각은 열 섬이고 백 섬이고 건천에다 내버릴 것이 분명한 데 왜 그런 헛짓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봉화수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그리 하는 것이더냐?”

봉화수가 고집을 꺾지 않자 최풍원이 한 발 물러서며 물었다.

“제게도 생각이 있습니다요. 그러니 논보리 파종은 제게 맡겨주시지요?”

“그렇게 네가 해보겠다니 그럼 한 번 해 보거라!”

최풍원의 허락이 떨어졌다.

곧바로 봉화수는 소작인들 쉰 명을 정해 논 한 마지기 씩 분배했다. 그리고 논농사와 마찬가지로 두 해 동안 도지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대신 김주태네 땅은 부치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았다. 그렇게 김주태 땅을 부치는 소작인들 태반이 넘게 최풍원의 휘하로 들어왔다. 이런 추세라면 명년 봄만 돼도 김주태가 농사를 지으려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었다. 문제는 논보리 농사의 성패였다. 어떻게 하든 성공을 거둬야 소작인들을 최풍원의 북진여각 아래 붙잡아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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