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씨종친회, 애국지사 마을 표지석 제막

 

[충청매일 전재국 기자]  노씨종친회 (회장 노승복)은 ‘애국지사마을’ 애국지사 3분의 표지석을 만들어 제막식을 23일 순국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애국지사 유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은 노씨종친회 총무 노재훈씨가 사회자로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송 1리 1001 표지석 세우고,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에 따라서 30여명이 마스크 착용하고 엄숙하게 애국지사마을 제막식을 거행했다.

첫 번째 부여군 규암면 노화리 498 노재철(1889년생) 애국지사는 1920년 1월에 북로군정서 김좌진 장국의 밀명을 띠고 입국한 김영진과 협력, 충남 및 전북 등지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수천원의 군자금을 조달했다.

또 임시정부 경리국 경고문 유고 등의 격문을 배포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일본 경찰들에게 체포돼 1922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9년형을 받았지만, 1927년 2월 옥고를 치루고 석방됐다. 출옥 후에는 향리에서 사숙을 운영하면서 청장년의 정신계몽에 주력했다 이시기에는 유족의 말에 따르면 유관순 열사 친동생을 가르쳤다는 주장설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이어서 두 번째는 규암면 합송리 354 노명우(1897년생) 애국지사가 공주 영명학교에 재학 중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공주시장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했고, 1931년 고향에서 금강문인회를 조직하고 농민을 대상으로 야학을 운영하면서 초등교육을 실시해 항일 독립의식 고취에 열정을 쏟았다.

그 이후에는 부여농민학원을 창설하고 농민청년회 농민조직을 조직했고, 1933년7월 부여농민조합연합회의 지부로서 대야구락부를 조직해 항일 농민운동에 힘써왔다.

이어 세 번째는 규암면 합송리 495 노명우(1915년생) 애국지사도 1931년 고향에서 금강문인회를 조직해 항일독립운동을 폈다. 1933년 7월 부여농민조합연합회의 지부로서 대야구락부를 조직해 항일운동에 크게 힘써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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