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담은 독창적인 작품세계가 곧 작가의 모습
자연을 담은 독창적인 작품세계가 곧 작가의 모습
  • 김정애 기자
  • 승인 2020.09.08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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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완호(서양화가)의 삶과 예술세계(상)

청주시립미술관, 2020 작고작가전 ‘삶과 예술의 일치展’서
미공개 대작·회화 등 120여점과 다양한 아카이브 선보여
지역 화단 상징적 의미 지녔던 사창동 작업실 재현 눈길
왼쪽부터 튤립, 1980년대 초반, 종이에 석판, 35×21cm, A.P. ‘네살배기 혜선이’, 1985, 캔버스에 유채, 연필, 244×190.5cm. 칸나,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연필, 280×429cm.
왼쪽부터 튤립, 1980년대 초반, 종이에 석판, 35×21cm, A.P. ‘네살배기 혜선이’, 1985, 캔버스에 유채, 연필, 244×190.5cm. 칸나,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연필, 280×429cm.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코로나 19 확산으로 문화예술계의 타격이 심각하다. 전시중인 미술관이 잠정적으로 전시 관람을 중단하거나, 예정됐던 공연 및 행사가 취소되는 등 무기한 연기 되었다. 충청매일은 전시장과 행사장에서 만날 수 없는 문화예술계 관련 인물들을 지면을 통해 조명하고자 한다. 청주시립미술관은 2020 작고작가전 ‘이완호: 삶과 예술의 일치’전을 기획, 회화·판화·드로잉 등 120여점과 작가의 생전 작업실을 재현한 아카이빙을 오는 10월 4일까지 전시하고 있으나, 코로나 19 확산으로 전시 관람을 중단한 상황이다. 이에 ‘故 이완호의 삶과 예술세계’를 2회에 걸쳐 싣는다. 

나에게 있어 삶은 어떠한 의미인지, 그것을 알고 그에 따라서 살아가고자 한다. 그것을 위하여 생활 속에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체질적으로 어떤 특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고자 한다.

작업과정을 통하여 선, 질감, 색채 등의 조형요소에 대한 나의 기호는 어떠한 것인지, 그것들이 얽혀서 이루는 것들 중에서 무엇을 선호하는지에 대하여 이해하도록 노력한다. 작품을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기존의 미술작품에서, 혹은 제작과정을 통하여 개인적인 취향을 확인하므로 하여 나의 한 인간으로서의 특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생활을 통하여 나 나름대로 삶을 정의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나만의 삶의 방식을 확립하여, 나 스스로의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나의 작업은 이를 위한 수단의 일부이다. - 이완호 작가의 작가노트 중에서-

 

청주시립미술관(관장 이상봉)이 2020년 작고작가전을 기획하며 전시 주제를 ‘삶과 예술의 일치’라 지은 것은 위의 작가노트로 부터 출발했다. 이완호 작가가 1980년대 후반 전시도록에 남겨 놓은 이 작가노트는 작가가 평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았는지, 작업에 임할 때는 어떤 생각과 철학을 지향했는지 단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글이다.

전시는 청주미술사 정립 일환으로,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완호의 작품을 통해 청주 미술에서 그가 차지했던 위치와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마련됐다. 또한 30년 동안 청주에 머물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이완호의 작품을 시대별로 구분해 선보이고 있다. 특히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미공개 대작, 회화, 판화, 드로잉 등 120여점과 다량의 아카이브, 그리고 지역 화단에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던 사창동 작업실 재현, 다큐멘터리 영상 등 이완호 작가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故 이완호(李莞鎬, 1948~2007) 작가는 1948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196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하면서 선배 세대로부터 당시 주류 흐름이었던 모더니즘 화풍의 영향을 받았고, 재학시절 ‘Group-X 창립전’을 시작으로 ‘서울현대미술제’, ‘앙데팡당’, ‘에꼴 드 서울’ 등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면서 중앙 화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홍익대 대학원 시절에는 홍익대학교 박물관 조교로 임용돼 당시 관장이었던 이경성 미술평론가로부터 한국의 고미술과 근현대 미술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원 졸업 후인 1976년 3월 충북대학교 서양화 실기와 이론 강의를 맡으며 청주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작가는 1978년 충북대학교 사범대학(미술교육과)에 전임으로 임용돼 본격적으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80년대 초반부터는 지역 화단의 첫 사례가 된 사창동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했으며, 1986년 작품 발표의 기회가 적었던 제자들을 위해 ‘무심회화협회’를 결성, 오랜 기간동안 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첫 번째 개인전은 석판화전으로 개최할 만큼 판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 1994년 창립된 ‘충북판화가협회’의 초대회장을 맡아 충북 미술계에 판화의 예술성을 알리고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승주학예사는 “청주시립미술관은 지역미술사 정립의 일환으로, 청주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작고작가를 중심으로 지역 미술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는 전시를 꾸준히 개최해 왔다”며 “‘이완호: 삶과 예술의 일치’전은 30여 년간 청주에 머물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故이완호 작가의 회고전으로, 인생의 절반을 청주에서 보내며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교육자로서,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세계를 구축한 화가로서, 삶의 기록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시대별 작품을 통해 선보인다”고 밝혔다.

전시에서는 이완호의 작품세계를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가장 초기작에 해당하는 1965년 유화 작품부터 1970년대 중반, 자를 대고 선을 중첩 시켜 그리기의 반복을 통한 평면의 자각을 드러내는 ‘Work’ 시리즈, 1980년대 ‘여성’, ‘소파’, ‘샤워기’ 등 다소 낯선 소재의 등장으로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들, 그리고 어항 속 금붕어를 형상화한 작품 ‘Meditaion on a gold-fish bowl’까지. 이 초기기간의 작품들이 ‘모색의 시기’에 포함된다. 

이어서 두 번째 ‘일상적 소재를 시각언어로’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일상적 소재를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구체화한 작품들이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자연물에 집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꼿꼿하고 날렵한 그의 독특한 서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1990년대 초반 캔버스 작업을 넘어 사물의 상태 그대로를 화면에 부착시키는 오브제 작업을 선보였는데, 여기에서는 생명을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머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시기인 ‘무심의 몸짓, 그리고 여유’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7년 작고하기 전에 그린 작품까지, 작가의 대표작품으로 알려진 ‘꽃’ 시리즈 작품들이 해당된다. 이때는 청년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참여했던 서울에서의 단체전 활동을 중단하고, 청주에서의 작업 활동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작품들은 자연을 스스럼없이 바라보는 무심(無心)의 경지를 느끼게 하며 동양의 문인화를 연상시키는 그의 화풍은 선비 같았던 올곧은 성품과 닮았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또 마음을 비우면 비로소 보이는 계절의 변화와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을 화폭 안에 담아냈다.

이외에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다수의 판화, 드로잉 작품들이 일부 공개된다. 1980년 태인화랑 개인전에 선보인 석판화부터 충북판화가협회에 출품한 판화 작품들, 그리고 생전에 그의 다양한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 디자인, 건축, 자연 등을 다룬 드로잉, 특히 제자들에게 늘 강조했던 ‘작업을 위한 드로잉(에스키스)’들을 통해 작가로서 작업을 대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승주 학예사는 “전시는 이완호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조망함으로써 청주현대미술사에서 그가 차지했던 위치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며 “삶과 예술이 일치되었던 화가 이완호의 이번 회고전을 통해 청주 미술의 기틀이 좀 더 단단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완호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제자 손부남(서양화가)작가가 추억하는 작가의 삶을 따라가 본다. 작가는 여행을 좋아했고 자연을 사랑했다. 그래서 작업의 화두가 꽃이나 나무와 같은, 늘 자연이었다. 이 자연을 관조하고 음미하는 자세나 의미를 어떤 형식으로 표현해 낼 것인가가 작가의 화두였다. 때로 작업의 방법을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작가는 “예술에 있어 내용이 없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견지했고 제자였던 손부남 작가는 “형식으로 내용을 버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작가는 생각을 관철시키려하거나 제자의 자유로운 의식 속에 강제로 심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손 작가는 “지금 돌이켜보니 선생님 스스로가 갖고 있던 내용과 형식에 관한 생각은 곧 당신의 작품세계였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작가가 담아내려는 의미 있는 내용을 중요시하는 성정은, 그분만이 갖고 있는 진실이나 진정성이라는 내용과 상통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타인과 다른 생각의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며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깊고 넓었던 작가는 그래서 때로 상처가 많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식당에 앉아 밥을 시켜놓고 말없이 식탁위에서  생각이 담긴 한시 몇 자를 적어 건네주는 것으로 그 다름을 대신 표현해주곤 하던 작가였다.

손 작가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경허대사의 시문 ‘무제’ 중에 들어있는 ‘산자청수류(山自靑水流)’라는 글귀다. 산은 저절로 푸르고 물은 흐른다 라는 의미의 이 말은 인위적으로, 억지로 무엇을 만들려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였다. 푸름을 얻고 싶다고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푸르러 질것이므로, 인내하고 노력하며 기다리라는 것이다. 예술가가 마음에 품고 실천해야할 덕목이었던 것이다.

작가의 생각은 곧 작품세계였다. 자연을 작품에 끄집어 들여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일구었던 작가는 작품 자체가 곧 작가의 모습이다.

일본의 미술평론가 야마게시 노부오는 ‘이완호 교수의 개인전에 부쳐’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작가의 작업세계를 표현해 놓았다.

‘말라비틀어진 억새, 엉겅퀴, 잘려진 꽃가지 일 것이다. 들판은 그려져 있지 않다. 우리 주위의 테이블 위에 놓여진 잘려진 꽃들. 바로 이 작가의 표상으로서 눈앞에 보이는 것을 여실히 이야기 하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달리는 직선과 사선이 인간의 통각작용을 초월하는, 무질서하고 잡다함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중략- 언뜻 보아 자연스럽고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그 선의 웅장함은 드러나는 갈등과 고난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여겨진다. (자연인 대상을) 그가 본 것은 비약적인 이념으로서의 깨달음적인 초월이 아니고, 죄인으로서 신을 향한 한없는 기도도 아니었다. 싹이 트고,  스스로 숨을 쉬고, 이윽고 말라 죽어가는 것이 생명이고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가는 윤회세계다.’

야마게시 노부오는 작가의 감성과 사유의 폭을 깊이 이해했던 것이다.

화면에 나무를 표현하더라도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행위에서, 종종 그림위에 그때그때의 단상을 적어놓은 글들에서, 작가는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요시하는 예술가였다. 작품 안에 무엇을 담아 표현할 것 인가를 놓고 늘 고민했던 진지한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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