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마땅한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미친년’의 세계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마땅한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미친년’의 세계
  • 충청매일
  • 승인 2020.08.2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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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위반 : 울타리를 뛰어넘다
(4)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
단순한 연작 개념보단 미친년의 테마 적극 발굴하는 프로젝트
여성들의 억눌린 섹슈얼리티, 자아와 삶의 분열 등에 관해 다뤄
그녀 작품 속 인물들은 당연히 시선을 받아내는 대상이 아닌
호기심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고 주관을 가지고 행동하며
때로는 사회적 비난의 경계선을 뛰어넘은 인물들로 넘쳐나
왼쪽부터 박영숙 ‘미친년들’(‘미친년 프로젝트’ 중) 1999. 박영숙 ‘꽃이 그녀를 흔든다’(‘미친년 프로젝트’ 중) 2005.
왼쪽부터 박영숙 ‘미친년들’(‘미친년 프로젝트’ 중) 1999. 박영숙 ‘꽃이 그녀를 흔든다’(‘미친년 프로젝트’ 중) 2005.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미친년’.

미친년이라는 단어를 처음 면전에서 들었을 때는 2000년대 초중반 어느 기관에서 전시팀장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전시장의 구조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던 중에 자세히 보니 작품들이 걸려야 할 합판과 석면의 두께가 너무 얇은 것 같아 살펴보니 본래의 설계서에서 명시된 내용과 달랐다. 목공을 마감하고 도색 작업이 시작됐던 터라 좀 고민을 했지만, 아무래도 작품과 관객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돼 시공업체에 목공 재공사를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렇게 하면 공임이 두 배로 들고 일정을 못 맞춘다는 시공업체의 실장과의 언쟁이 있었지만 ‘설계서대로’ 재공사를 하기로 하고, 저녁밥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멀리서 불콰하게 술이 취한 시공업체 실장이 큰 소리로 말을 하면서 다가오는 것 같긴 했는데 누구를 향해 하는 말인지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들었던 “미친년”이라는 말은 아직도 내 인생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나중에 그는 내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는 “동안이시라 몰라보았다”며 “누님”이라고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술로 벌인 실수를 눙치며 화기애애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공사와 같은 남성이 주도하는 일에 대해 젊은 여성이 무슨 직함을 달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아직 낯설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이십년 가까이 되어서 다시 생각해본다. 미친년이란 무엇인가.

정신이 온전치 않은 동네 미친년들은 머리에 꽃을 꽂고 다녔다고 한다. 몸은 다 컸지만 동네 어린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놀려도 놀림을 받는 줄 모르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여자들이 있었다. 동네 바보형과 쌍벽을 이루며 어느 마을에나 있었다는 그들은 조신하지 않게 돌아다녀도 ‘미친년이니까’로 이해가 되었다.

이러한 ‘미친년’의 뉘앙스, 통제 범위 밖을 벗어나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는 여자들, 기존 질서에 종속되지 않고 고정되지 않으며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여자들이라는 뉘앙스에서 사진을 매체로 다루는 작가 박영숙은 어떤 반짝임을 보았다. 1999년에 시작된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는 ‘미친년’이라는 용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했던 것이다.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는 작가의 지인들을 모델로 해 연출한 사진 연작이다. 초기의 이 프로젝트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 익명의 여성들(작가의 특정 지인들이지만 관객들에게는 익명의 인물일 수밖에 없는)을 둘러싼 소품들이다. 자기 자식인 품어 끌어안은 베개와 낡은 구두, 옷을 다 여미지도 않은 채 생각에 빠져 있는 여성의 손에 들린 담배의 연기, 춤이라도 출 것 같은 모습으로 흥겹게 웃으며 들어 올린 가위와 비단 천… 이 가운데 단연 돋보였던 것은 뒹굴며 놀고 있는 아이와 그 주변에 마구 흩어져 있는 각종 일상의 사물들이었다.

쓰레받기, 부탄가스, 칼, 먹다 남은 와인, 케찹과 반찬통, 뒤집어진 고무장갑, 빨지 않은 아이의 내복, 걸레, 재떨이, 칼 등이 굴어 다니는 바닥에 누워 인형을 들고 노는 아이와, 아이의 발을 어루만지며 다리를 꼬고 앉아 세상 멀쩡한 표정으로 관객을 응시하는 여성.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여성의 타고난 의무라고 여기는 어떤 이들의 눈에 이 여성은 분명 ‘미친년’으로 보일 것이다. 작품을 보는 순간, 아니 지금 술병과 재떨이가 굴러다니는 이 엉망진창의 바닥에 아이를 굴리고 있는 저런 미친년이 다 있나, 하는 노여운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다. 각 잡힌 외출용 원피스를 차려입고 이 엉망진창 속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것 같은 이 여성은 이름을 대면 알만한, 지금은 우리나라 미술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있는 유명 작가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가면서 육아도 하는 여성이라면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지 단숨에 이해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하루만 손을 놓아도 어지러워지는 집안 살림과 24시간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를 짊어진 여성의 사회활동이라는 것은 미치지 않았어도 미칠 것 같은 상황의 연속이다. 시간을 쪼개야 하는 만큼 그 어떤 일도 원하는 만큼 백퍼센트를 이룰 수 없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구걸하듯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며, 그렇게 살아도 이기적이라는 혹평을 피할 수 없는, 그러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 작품은 던지고 있는 것이다. 대개의 남성들이 별로 고민하지 않지만 대개의 여성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에 대해, 그저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미친년’의 대열에 세워지는 시스템에 대해 박영숙은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다.

박영숙 작가를 처음 만나 ‘미친년 시리즈’를 잘 보았다고 말했을 때 그는 ‘미친년 시리즈’가 아니라 ‘미친년 프로젝트’라고 정정해 주었다. 과연 시리즈와 프로젝트는 상당히 다른 의미가 있다. 박영숙의 이 작품들은 단순한 연작의 개념이기보다는 ‘미친년’의 테마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일련의 실행적 프로젝트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들의 억눌린 섹슈얼리티에 관해, 자아와 삶의 분열에 관해, 역사적 여성 인물들의 재평가에 관해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 중에는 앞서 언급했던 작품처럼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도 있지만 상당히 유쾌하고 흥겨운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도 있다.

‘꽃이 그녀를 흔든다’는 ‘미친년 프로젝트’ 가운데 꽃과 여성이라는 소재에 집중해 제작된 작품들 중 하나이다. 복사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 분홍 머플러를 두른 중년의 여성이 담장 너머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다. 한 손은 허리춤에, 다른 손은 담장 위에 얹고, 까치발을 디디고 고개를 길게 빼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훌쩍 넘겨보는 눈빛에는 호기심이 반짝인다. 담장을 넘어서는 이러한 시선이야말로 가부장적인 의미에서 ‘미친년’의 특성 중 하나가 아닐까.

미술의 역사 속에서 여성은 호기심 어린 시선의 대상이 되어 왔다. 때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정숙하게’ 몸을 가리고, 때로는 무방비로 노출된 채, 때로는 거울 속의 자기 모습에 푹 빠진 모습으로, 미술 작품 속 여성들은 당연히 시선을 받아내는 대상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작품 속의 여성 인물이 관객과 눈을 맞추더라도 그것은 자신을 감상하게 될 남성 관객을 전제한 것이었다. 대개는 나른하게, 미묘한 웃음을 띠기도 하고 유혹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하며 여성들은 감상하기 적합한 대상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그런 맥락에서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 속 인물들은 얌전히 앉아 만만하게 감상의 대상이 되어주는 여성들이 아니다. 자신의 호기심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고, 욕망을 드러내고, 주관을 가지고 행동하고, 때로는 사회적 비난의 경계선을 뛰어넘는 여성 인물들이 박영숙의 작품 속에는 넘쳐난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미친년이란 무엇인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귀찮은 일을 당하게 될 것만 같은 여성들, 폐쇄적이고 관료화된 세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마땅히 따라야 하는 질서에 의문을 품고, 자기 의견을 기필코 관철시키고, 세계의 비밀에 호기심을 갖는 여성들, 그러한 여성들이 ‘미친년’이 아닐까. 적어도 박영숙의 작품 속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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