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충청매일] 진퇴(進退)란 어떤 직위나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물러남을 의미한다. 지금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위기 상황인데 우리 정치권은 진퇴 싸움으로 조용한 날이 없다. 그 가운데 꼴성 사나운 것이 하루도 조용하지 않은 법무부 수장과 검찰 수장 간의 진퇴 싸움이고,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처럼 자진 사퇴 공방으로 이어지는 전례가 재연되는 것이다. 이외에 조용하지만, 다시 터질 수 있는 윤미향 정의연 전 대표의 의원직 진퇴도 기삿거리로 남아 있다.

우리 역사에는 때와 시를 맞추어 진퇴를 결정하여 모범이 되었던 귀거래사가 많이 있지만, 현대사에서 그 모범이 될 사건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퇴계 선생은 이조 판서의 벼슬을 버리고 낙향을 할 때까지 열한 번 귀거래를 하고 있다. 그의 시의적절한 진퇴로 수많은 인파가 한강 나루를 메웠다고 한다. 경성 부사 유관현(柳寬鉉)은 을해년 흉년에 지성으로 어려움을 겪는 백성을 위해 구휼을 하였지만, 가뭄이 계속되자 자신의 부덕이라고 하여 관직을 버리고 귀거래를 하였다. 그의 낙향길에는 가마라도 메게 해달라고 몇백 리 뒤를 따른 백성이 있었다. 역으로 헌종 때에는 달포 남짓 장마가 끝이질 않자 영의정 권돈인(權敦仁)과 우의정 박회수(朴晦壽)가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면서 스스로 진퇴를 결정하고 있다. 한명회(韓明澮)나 조광조(趙光祖)와 같이 사이비 귀거래를 하여 권력을 잡고자 시기를 노린 사람도 있지만, 우리 선조의 정치에서 귀거래는 하나의 도의적인 법도였다.

미국에서도 건국의 아버지인 워싱턴이나 국가의 틀을 만든 제퍼슨은 고향에 돌아가 하얀 집을 짓고 살았다. 현대사에서 영국 대처 총리의 용기 있는 사퇴는 가장 회자되는 이야기다. 대처가 스스로 사퇴를 결정하자 여론은 그에게 세 개의 훈장을 달아주었다. 영국병을 고친 훈장, 포클랜드 전쟁 승리의 훈장, 추락한 대영 제국의 위상을 높인 훈장이다.

역사는 지위와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올바른 진퇴를 결정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의 사람됨을 칭송한다. 역사적으로 벼슬을 가진 사람이 인간의 법도를 지켜서 스스로 진퇴 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는 태평 시대였고, 그렇지 않은 시대는 난세의 모습을 보인다. 세월이 흉흉하고 어려울수록 덕과 예가 없는 사람이 많아서 스스로 권력과 지위를 버리는 사람이 적다. 그 진퇴를 두고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듯 서로 공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것이 아니다.

특히 정치인을 필두로 공인이 자신의 진퇴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여론이나 징계에 의한 강제적 사퇴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보기 나쁜 것도 없다.

최근 들어 공인되는 것에 박수를 받는 사람이 없어지고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자리와 권력을 정파와 개인 사욕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반복될수록 코로나 19만큼이나 우리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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