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김주태는 자신만만했다. 산에 있는 나무가 베어져 제목이 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가장 마지막 과정의 뗏목꾼들이 없으면 만사가 헛일이었다. 다른 공정이야 특별한 기술이 없더라도 힘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떼를 모는 일은 아무나 데려다 쓸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떼는 단단한 땅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물 위에서 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물 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물 속 사정까지 훤하게 꿰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한두 해 배웠다고 해서 곧바로 떼를 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러 해 경험을 쌓았다 해도 숙련공인 도사공을 따라다니며 조수 일을 수년 간 배우고 익혀야 했다. 떼를 모는 기술뿐 아니라 물길까지 손금 보듯 알고 있어야 드디어 명실상부한 뗏꾼이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동강이나 서강에서 떼를 모는 일은 남한강에서 떼를 모든 일과는 또 달랐다. 남한강은 넓은 물길이었지만 동강이나 서강은 강폭도 좁고 강바닥의 경사도 심해 여울이 많았다. 그래서 여느 강에서 떼를 몰던 사람을 구해와도 동강이나 서강에서 떼를 모는 일은 어려웠다. 그만큼 숙련된 뗏꾼이 필요한 곳이 강원도 영월 지역이었다. 그런 뗏꾼들을 모두 쥐고 있으니 김주태는 제 마음대로 목상들을 주물떡거릴 수 있었다. 그걸 믿고 김주태는 우갑노인이 제시한 조건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수락한 것이었다.

“매사 탄탄한 게 좋으니 그 내용을 쓴 문서를 하나 해주시오!”

우갑노인이 김주태에게 계약서를 하나 써달라고 요구했다.

김주태는 서슴없이 우갑노인의 청을 들어주었다.

계약이 끝나자 우갑노인은 청풍도가에 쟁여져 있던 모든 곡물들을 충주에서 올라와 기다리고 있던 대선에 몽땅 싣고 읍성 나루를 떠났다. 청풍도가 창고는 텅 비어 버렸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북진여각에서도 행동을 시작했다. 비호와 왕발이를 영월과 각 임방으로 보내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가는 모든 물산을 선매하도록 지시했다. 특히나 영월 맏밭나루 성두봉 객주에게는 도도고지산 막골에 붙잡혀있는 도사공 상두와 긴밀하게 연락을 취해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채비를 시켰다.

청풍도가를 에워싸듯 곳곳에 포진한 북진여각의 각 임방들은 김주태의 목을 죄기위해 보부상과 뜨내기 행상들은 물론 마을 아낙들의 보퉁이 물건까지 길목을 지키고 있다 사들였다. 북진여각과 상전객주들도 청풍도가 상권이 미치는 지역까지 들어가 물산들을 도거리했다. 북진여각에는 각 임방에서 사들인 물산과 산지에서 밀려드는 물산들로 넘쳐나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이미 창고는 넘쳐났고 여각 안마당은 물론 바깥마당까지 물산들을 야적해야 할 형편이었다.

“이 사람들아, 값싼 곡물들은 바깥으로 빼고 특산품들만 창고 안으로 옮겨!”

장석이가 정신없이 여각 안팎을 돌며 일꾼들을 독려했다.

“형! 수집도 중하지만 경계도 철저하게 서야 혀!”

“걱정 말어. 밤낮으로 동몽회 아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 쥐새끼도 한 마리 못들어와!”

최풍원이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를 일에 대비를 시켰다.

북진여각에 청풍 근방의 물산들이 이 정도로 집산되었으니 청풍장과 도가에도 곧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청풍도가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터였다. 대행수 최풍원은 장팔규에게 읍내 청풍장의 실태를 살펴볼 것을 일렀다. 그리고 무슨 일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즉각 여각으로 달려와 알리도록 단단히 일렀다. 예년 같으면 바쁜 농삿일이 잠시 주춤한 때라 청풍 읍장의 향시가 열리는 날이면 각기 싸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팔려고 장마당이 사람들로 북적거렸어야 했다. 그러나 향시가 열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읍내 장마당은 농번기 때보다도 더 썰렁했다. 더구나 매매가 성사되지 않는데도 물건 값이 앙등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북진여각에서 모든 물산들을 도거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진여각에서 풀어놓은 돈으로 사람들 수중에 돈은 있었지만 물건이 귀하니 값이 폭등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북진임방에서는 물건만 가지고 있어도 앉은자리에서 이미 곱절이 넘는 이득을 남기고 있었다.

청풍도가 김주태도 평생 장사를 해온 사람이었다. 청풍 읍장이 이렇게 썰렁해진 이유가 북진여각에서 꾸민 일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김주태는 오히려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