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충청매일] 6월이다. 분명히 여름이다. 그런데도 설레는 마음으로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기에는 요즘의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아직도 그칠 줄 모르고 지구촌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10시만 되면 자동적으로 포털사이트로 손이 간다. 그리고 확진자가 얼마나 늘었는지 우리 지역에서는 발병한 사람은 더 없는 지 살펴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확진가 어제보다 좀 줄어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걱정이 시작된다. 최근 들어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고위험군에 속하는 연령층에서도 확진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린다. 정말 큰일이다. 답답하고 걱정스럽기만 하다.

얼마 전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다. 승객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러고도 최대한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두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예전의 일상적인 삶과는 다른 생을 영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교회 예배도 온라인으로 드리는 분들도 많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 경기도 관중 없이 치르고 음악 콘서트도 관객 없이 텔레비전 모니터 앞에서 열창을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탁구 같은 건전한 운동을 하는 것도 겁이 나고, 공원을 산책할 때도 마스크는 물론 사람들과 떨어져 걸어야 한다. 정말 평범했던 지난날의 일상이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모이지 마라!’, ‘가까이서 대화도 하지 마라!’ 이런 구호가 이상하지 않게 들리는 정말 힘들고 피곤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 구호대로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창궐로 인해 힘든 것 중에서도 더욱 힘든 것이 바로 자연과도 마음 놓고 가까이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봄이 왔어도 마음껏 봄을 느끼지 못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란 말 그대로 되고 만 것이다. 봄에 이어 여름이 왔지만 여름도 역시 만끽하지 못하고 있다. 겨울을 이기고 드디어 봄이 이 땅에 찾아왔을 때 그 아름다운 봄꽃을 마음 놓고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가까운 곳에 꽃대궐이 있어도 그곳에서 가족과 손잡고 걸어보지 못했다.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그리고 벚꽃에 대한 아쉬움을 묻어두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을 이어왔다. 봄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데 이제 여름이 되어 또 여름꽃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코로나19를 아는지 모르는지 뜰에 예년처럼 장미가 피었다. 그 장미가 울타리에도 피었다. 넝쿨장미다. 장미는 혼자 피어도 예쁘지만 넝쿨 장미처럼 여럿이 같이 있어도 더욱 예쁘다.  사람은 모이는 것이 미덕이 아닌 게 되었지만 넝쿨장미는 여전히 여럿이 모여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여름에 피는 꽃은 장미만 있는 게 아니다. 접시꽃도 있고 살구꽃도 있다. 그 꽃들은 장미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뜨락 한 쪽 구석에서 조용히 꽃 피우는 모습이 예쁘기 그지없다. 이밖에도 뜰에서 흔히 보이는 키 작은 꽃으로 초롱꽃이 있고, 떡쑥도 있다. 꽃기린도 있고, 달맞이꽃도 있다. 달개비, 수국 등의 꽃도 여름인 6월에 피는 꽃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지만 우리는 함께 모여서 이 꽃들을 마음 놓고 감상할 수는 없다. 그저 한 둘이서 꽃 주위를 맴돌 뿐이다. 그래도 어쩌랴 싶다. 코로나19의 악몽을 떨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꽃을 볼 내년을 기약하려면 더욱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하고,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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