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저기가 어디요?”

“거기가 옛날에 어린 임금이 귀양살이하던 청령포라는 곳이래유.”

“임금이 왜 저런 고랑탱이까지 귀양을 왔디야?”

“작은아부지한테 임금을 뺐기고 저리루 귀양 왔다가 저기서 죽었드래유.”

“남두 아니구 왜 작은아부지한테 왕 자리를 뺐겼대유?”

“뺐는 놈이 정해져 있냐? 우리 집은 큰아부지가 모든 재산을 움켜쥐고 내놓지를 않아 우리 아부지는 거시기 두 쪽만 가지고 살림을 났디야!”

“그거야 여느 백성들 얘기지.”

“이놈아, 백성이나 임금이나 다를 게 뭐더냐. 힘 있고 욕심 많은 놈이 차지하는 거지!”

“그건 무지한 백성들이나 하는 짓거리 아녀?”

“무지한 백성들이 뭘 알아 그리 하겄냐. 아는 것들이니까 그런 짓을 하지. 늙은 말이 콩을 더 잘 주워 처먹는 것도 모르더냐?”

“객쩍은 소리들 그만 하고, 길이 험하니 발끝이나 조심 하거라!”

왈가왈부하는 동몽회원들에게 강수가 핀잔을 주었다.

“그래유. 길도 험하고 갈 길도 멀드래유!”

“형씨, 거기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겠소?”

강수가 길잡이에게 물었다.

“영월과 정선 중간쯤이니 직선으로야 그리 멀지 않지만 산으로 길이 없어 갈 수 없고 구불구불 물길을 따라 돌아돌아 가야하니 십리를 삼십 리 폭은 가야 할거래유.”

“어둡기 전에는 갈 수 있는가요?”

“등짐을 지구두 가는데 빈 몸으로야 너끈하지유. 그란디 오늘 중에 갔다 올라문 이래 느적거려선 힘들어유, 약빠르게 움직이야지!”

“오늘 안 옵니다!”

“안 오면 그 깊은 산중 어디에서 잔단 말이드래유?”

오늘, 영월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길잡이가 깜짝 놀랐다.

“일단 거기를 가보고 내일이든 모래든 올 것이오!”

“그런데서 함부러 자다간 호랭이 만나유!”

길잡이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형씨, 그런 걱정일랑 말고 우리를 그곳까지만 잘 데려다 주시오!”

강수가 길잡이를 안심시키며 길 안내나 잘해달라고 부탁했다.

동강 물과 접한 봉래산 허리를 돌아 능선을 하나 넘어섰다. 길잡이가 강 가운데 물길을 막고 서있는 거무튀튀한 바위를 가리키며 둥글바위라 했다. 그리고 물 건너 꽤나 높아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완택산이라 했다. 큼직큼직한 완택산 줄기가 흘러내리다 강을 만나 모래톱을 이룬 산자락에는 마치 산불이 난 것처럼 곳곳에서 연기가 회오리바람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제, 장회나루를 떠나 영월로 오면서 수없이 보았던 화전이었다.

“뭘 하려고 저렇게 불을 지르는 거요?”

“때도 그렇고 지금 심어 먹을 거라고는 가을 메밀 밖에 없드래유. 게다가 이런 산골에는 물도 귀하고 기름기가 없어 다른 곡물은 잘 여물지도 않어유.”

“저렇게 메밀을 많이 심어 그걸 다 어떻게 한답니까?”

“많아서 걱정하는 거래유. 그거야 잘 여물었을 때 허는 배부른 얘기고, 이런 산골에서는 메밀하고 옥수수하고 감자 밖에 더 있대유. 그게 아니면 이런데 사는 산골사람들은 다 굶어 죽어유.”

화전을 일구는 곳은 그곳뿐이 아니었다. 강을 따라 올라가며 강 주변에 빠꼼한 구석이 있으면 여지없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가는 여기는 영월 땅이지만 저기 강 건너는 평창 땅이래유. 여서는 안 보이지만 저 샛강을 따라 골짜기를 돌면 진탄나루가 있고, 그 나루를 건너면 제법 큰마을이 있어유. 거가 미탄 마하리라는 동네래유. 인제 조금만 더 가면 정선 땅이래유.”

어라연을 지나고 문산을 지나며 길잡이가 일일이 지명들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산은 첩첩하고 그 산이 그 산이고 물길은 얼마나 꼬불거리는지 마치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월을 오면서도 그랬지만 동강으로 들어오니 그야말로 산과 물 뿐이었다. 눈 닿는 곳마다 절경이다.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선 땅이래유. 우리는 신동 운치리에서 강을 건너 가수리 하미굴에서 도도고지산으로 들어갈 거래유.”

걷는 것에 지쳤는지, 아니면 경치에 취했는지 모두들 반응이 없었다. 강수 일행이 도도고지산 초입에 당도했을 때는 아직도 해는 머리 위에 곧추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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