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산판은 낙엽이 다 떨어진 늦가을에서 나무가 물을 내린 겨울 동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벌목의 기본이었다. 그래야만 이파리를 모두 떨궈낸 나무의 무게가 줄고, 앙상하게 바닥이 드러난 산비알에서 통나무를 굴려 강가까지 옮기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겨우내 벌채된 나무들을 물가에 쌓아두었다가 눈이 녹고 언 강물이 풀리면 떼를 엮어 하류로 떠내려 보내는 것이었다. 물론 여름이라고 벌채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사냥꾼이 꼭 눈 내린 겨울에만 사냥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겨울에는 시야가 트여 짐승을 발견하기 쉽고 그만큼 안전하고 눈이 내리면 눈 위에 난 짐승 발자국을 뒤따라가 잡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산판의 벌목일도 그와 한가지였다. 그런데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오뉴월에 벌채를 한다니 심봉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같은 때 벌채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여기 사람들 하는 얘기가 그래유.”

성두봉도 직접 제 눈으로 본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때지 않은 굴뚝에 연기 나는 법은 없었다. 뭔가 기미가 보였으니 그런 말이 나온 것이었다.

“어지간히 똥줄 타는 일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여름에 나무를 벤단 말인가?”

“그러게 말이유. 정신 줄 놨거나, 똥줄 타거나 둘 중 하나겄지유”

“그런데 그들이 청풍도가 사람이라는 것은 어찌 알았는가?”

심봉수는 성 객주 이야기에도 뭔가 어리숙한 구석이 느껴졌다.

“우리 임방에 숩시 오는 떼쟁이가 있는데 그가 그러더라구유.”

“뭐라고?”

“자기들은 청풍에서 온 사람들인데 곧 큰 산판이 벌어질 테니, 떼쟁이든 동발꾼이든 벌채꾼이든 영월에 나무 만지는 사람들은 몽땅 모아달라고. 청풍에서 산판을 벌일 정도라면 도가 밖에 더 있겠슈?”

“그야 그렇지만 산판에서 벌채꾼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동발꾼이나 뗏꾼들은 뭣하러 모은단 말인가. 그것 또한 요상한 일 아닌가?”

“요상하기는 하지만 큰 산판이니 모개로 나무장사를 할 모양인 게지유.”

“모개라?”

심봉수가 성 객주 이야기를 듣고는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무 일은 크게 베는 일과 파는 일, 두 가지로 나눠 진행되었다. 산판에서는 벌목꾼이 벌채를 해서 동발꾼이 강가로 운반하고, 강가로 옮겨진 나무를 엮어 강물에 띄워 옮기는 것은 뗏꾼들이었다. 산판을 벌이는 것은 나라에서 명을 받아 관아에서 직접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산주나 관아에서 불하받은 그 고장 토호들이 맡아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면 목상들이 나무를 사서 자신들이 원하는 필요한 장소까지 운반해가는 것이 통례였다. 여기에서 산판을 하는 토호들이 벌목꾼과 동발꾼을 고용하고, 목상은 공임을 주고 뗏꾼을 고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공정을 모개로 한다는 것은 산판부터 파는 일까지 모두 한 곳에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떼쟁이 하는 말이, 지금 하는 떼를 그만두고 자기들한테 오면 산판에서 벌채된 나무를 강가에서 엮을 때까지 놀고먹어도 공가를 주겠다고 했다는 거유. 그래가지구 영월 떼쟁이들이 모두 그리로 몰려갔다는 구먼유. 그게 한 삭 쯤 전이라우.”

“그래서 떼가 멈췄구먼!”

심봉수도 그제야 동강에서 떼가 내려오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떼가 동강에서만 내려오는 것은 아니었다. 영춘의 소백산에서도 산판일은 벌어졌다. 그렇지만 영월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었다. 영월에서도 서강과 동강 떼가 있었지만 영춘이나 서강 떼의 양은 동강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떼의 양과 질 문제에서도 단연 영월 동강 떼가 최고였다. 그러니 동강 떼가 멈추면 목상들은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나무 좀 만진다 하는 놈들은 모두 가수리로 가 있다니까유. 지금 영월에서는 장작 뽀개는 놈도 찾기 힘들어유!”

성두봉이가 허풍을 섞어 말했다.

산판부터 목상까지 모개로 독점을 하며 나무 일을 하는 사람들을 몽땅 끌어들였다면 분명 무슨 의도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산판을 벌인 놈들이 청풍도가에서 왔다면 그 뒤에는 김주태가 있을 것이다. 김주태라면 능히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만한 작자였다.

“김주태가 옛날 짓거리를 또 하고 있구먼!”

성두봉을 통해 그간의 사정을 듣고 있던 심봉수는 뭔가 집히는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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