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자네들이 인사를 받아야지, 내 안부가 먼저겠는가? 어서 이리루 올라오게!”

성두봉이가 서둘러 봉화수 일행을 임방 마루로 끌어들였다.

“이봐, 성 객주! 북진 대행수께 보낸 급한 전갈이란 게 뭔가?”

심봉수가 마루에 올라앉자마자 성두봉을 재촉했다.

“아이고, 성님두 뭔 성미가 그리 급혀슈! 우선 숨도 돌리고 요기라도 한 후에 말씀을 드리리다.”

성두봉이 심봉수를 주저앉혔다.

어느새 달은 중천에 떠있었다. 성두봉 객주의 영월맏밭 임방은 나루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았지만 물소리도 강물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지막한 흙담 너머로 우뚝한 산들이 또 다른 담처럼 임방 앞을 둘러싸고 있었다. 앉으나 서나, 나가나 들어가나 눈에 보이는 것은 맨 산이었다. 청풍이나 북진도 오지 산골이라 여겼는데, 남한강 끝자락 영월에 오니 그건 산지도 아닌 평지나 다름없었다. 영월에는 그저 눈앞이 산이었다. 밤늦게 당도한 객들의 요깃거리를 준비하느라 영월맏밭 임방 안팎이 분주했다.

“하, 완전 깡조밥이네!”

“거기에 감자도 박혀있어!”

“강원도는 강원돈가벼!”

이슥해서야 차려온 밥사발을 보고 동몽회원들이 탄성을 질렀다. 밥사발을 보니 쌀 톨은 고사하고 보리 알갱이도 하나 없이 전수 누리끼리한 좁쌀뿐이었다. 밥사발에는 조밥만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주먹만한 감자가 하나씩 박혀있었다. 게다가 푸석한 조밥이 찰기가 없어 쌓아올리지 않았는지 고봉으로 담기지 않고 사발 주둥이가 평평했다. 한참 나이에 종일 먼 길을 걸어 시장한 동몽회 아이들에게는 사발 째 삼켜도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성 싶었다.

“우리 동네나 여기나 이것도 없어 노다지 굶는 사람들이 사방이라네!”

심봉수가 조심스레 조밥을 뜨며 말했다.

“장사하는 객주 댁이 이렇다면 다른 사람들 형편이야 보지 않아도 뻔하겠지요.”

봉화수 역시 조심조심 밥숟가락을 뜨며 말했다.

“손 떠는 늙은이는 굶어 죽겄네!”

끈기 없는 조밥을 떠먹느라 모두들 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거 참! 우리집 찾아온 손님들을 이렇게 부실하게 대접해 민구스럽구먼유!”

성두봉이가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나저나 성 객주, 청풍도가 놈들이 예까지 와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 연유를 말해보게!”

심봉수가 조밥을 흘리지 않으려고 숟가락을 잔뜩 움켜쥔 체 말을 돌렸다.

“목상 일이니 성님께 먼저 기별을 해야 했지만, 성님이 해결하기보다는 대행수가 직접 처결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그리 했습니다요.

“성두봉이가 심 객주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혹시라도 이 일로 심봉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해서였다.

“동생이 어련히 알아 그리 했겠는가? 그러니 무슨 일인지 상세히 말해보게나!”

심봉수가 성 객주를 어루만지며 그리한 연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한 삭 전쯤 됐을까나유. 며칠 전부터 동강 쪽에서 떼가 내려오지 않는다고 사공이 와 그러는거유. 그래서 갈수기라 물이 줄어 그러는가 했지유.”

“동강 떼가 언제 물이 없어 못 내려오는 것 봤는가?”

동강 주변은 워낙에 산도 많아 골이 깊은지라 어지간한 가뭄에도 수량이 줄지 않았다. 다만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남한강처럼 몇 바닥이나 되는 큰 떼를 띄우지는 못했다. 그래서 한 동가리나 두 동가리를 엮어 띄웠기 때문에 수량이 줄고 물길이 좁아도 강이 어는 한겨울이 아니라면 동강에서는 언제나 강에 떠있는 뗏목을 볼 수 있었다.

“그러게 말이유. 그래서 저두 긴가민가하며 사공 얘기를 귓등으로 흘려들었지유.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는데 나루에 이상한 얘기가 도는 거유?”

“뭔 얘기가?”

“여기서 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영월과 정선 중간 쯤 될라나 가수리라는 곳이 있어요. 워낙에 깊은 골짜기라 이 동네에 몇 십 년을 살았어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그런 곳이유. 높는 산들이 줄줄하고 물로 막혀있는 데라 떼쟁이들이나 심마니나 그런 사람들이나 알 그런 곳이유. 거기 도도고지라는 큰 산이 있는데, 얼마 전부터 타관사람들이 떼로 나타나 산막을 짓고 큰 산판이 벌어졌다는 거유.”

“수풀이 우거진 지금?”

심봉수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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