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조선 시대 회곽묘
[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조선 시대 회곽묘
  • 충청매일
  • 승인 2020.05.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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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대 경영학과

[충청매일] 장자승생기야(葬者乘生氣也), 장사를 지낸다는 것은 생기를 타야 한다. 사람이 죽으면 장사를 지냈다. 아무 데나 묻는 것이 아니고 생기를 탈 수 있는 곳을 찾아 장사를 지냈다. 생기를 타는 곳에 장사를 지내면 유골이 오랫동안 보존되어 유전인자가 동기감응 하여 자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였다.

어떤 곳이 생기가 모이는 명당일까? 풍수에서는 이러한 곳을 찾아 묘를 쓰고 집도 지었다. 유골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방법은 생기가 응집되는 곳을 찾아 장사를 지내는 방법도 있지만, 좋은 땅을 구하고도 장사의 방법이 온전하지 못하여 물이 들어가거나 나무뿌리가 침투하거나 해충들이 침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장사를 지내는 데 회를 사용하였다. 조선조에서는 사대부가 등 지배계층에서 장사가 발생하면 벼슬의 등급에 따라 왕이 장사 물품을 하사하였는데, 가장 귀한 것이 석회였다.

회는 나무뿌리를 막고 물과 개미를 방지한다. 석회는 모래를 얻으면 단단해지고 흙을 얻으면 들러붙어서 여러 해가 되면 굳어져서 전석이 되어 개미와 도적이 모두 접근하지 못한다.

회를 사용한 시기는 고려말부터로 추정된다. 조선조에서는 태조 때부터 장사가 나면 토광에 회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회격묘가 유행되었다. 회격묘는 광중을 파고 목곽을 안치한 후에 광중의 벽과 곽 사이의 공간을 삼물(석회 3, 모래 1, 황토 1)로 채운 후 목곽의 천판 위를 천회(삼물)로 덮는 것이다. 회격묘의 관 형태는 이중관 형식이다.

조선 중기 이후에 조성되기 시작한 회곽묘는 생토면 굴광 후 회곽을 조성한 다음 관을 안치하는 형태로 단관 형식이다. 회격묘, 회곽묘의 묘제 방식은 유골을 온전하게 오랫동안 보존하는 방법이다.

회곽묘로 유명한 곳은 예산에 있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로,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도굴을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회곽 묘역을 지켜냈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면서 신내동 현장을 가보니 400여 년 된 조선 시대 공동묘지가 발굴되었는데, 대부분이 회곽묘였다. 유골이 400여 년 동안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었다.

최근에는 장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 화장률이 90%를 넘어간다. 매장하는 경우는 10%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화장 후 유골의 보존 방식도 납골당장, 수목장, 산골장, 수장, 화초장, 잔디장, 분묘장 등 다양하다. 예전에는 장사의 방법이 유골의 장기적 보존 방식에 관심을 가졌으나, 오늘날에는 유골의 장기적 보존 방법보다는 격식의 간소화와 비용의 최소화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

그러나 위대한 업적을 남겨 후세에까지 무덤을 유지하고 유골을 온전히 보존하고자 한다면 조선 시대 회곽묘를 현대에 맞게 적용해보아도 좋겠다. 화장의 경우에도 화장 후 유골을 회곽묘 안에 보존하는 방법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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