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집안으로 들어갔던 임구학이 잠시 후 푼주에 마실 물을 한가득 담아 가지고나왔다.

“어여들! 목부터 축이게!”

임구학이 푼주를 사람들 사이에 내려놓았다.

“객주님, 장회는 별일 없으십니까?”

물을 한 사발 들이키고 난 봉화수가 물었다.

“그렇잖아도 사나흘 전 심 객주께서 영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길 들려 언지를 주고 갔다네. 그 일 때문에 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덕산을 들려 며칠 동안 임방 단장을 마치고, 오늘 아침 나절에 떠나 대전을 들렸다 예까지 온 것입니다요.”

“아침에 출발해 여까지 왔으니 몹시 피곤하겠구먼. 그래 우리 입방에는 얼마나 머물 수 있겠는가?”

임구학이 봉화수와 동몽회원들이 자신의 집에 언제까지 묵을 수 있는가 그 시일을 물었다.

“임방 단장이 끝내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요? 그 기일 동안만은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요?”

“그, 임방 단장 때문에 하는 말인데, 나는 그 임방을 단장하지 않아도 될 성 싶네.”

“임방 단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요?”

이번에는 봉화수가 임구학에게 연유를 물었다.

“심 객주 어른이 전해줘서 여각 대행수 어르신의 뜻은 잘 알고 있네. 그런데 우리 장회임방은 임방 단장보다는 가죽 건조장을 하나 만들었으면 하네!”

“가죽 건조장을요?”

“그렇다네! 내 벌써부터 건조장을 따로 하나 만들려고 했지만, 내 혼자로는 임에 부쳐 차일피일 미뤄왔는데 대행수께서 사람까지 붙여주시는 이번 기회에 가죽 건조장을 하나 만들어 제대로 물건을 만들어 내놓고 싶다네. 그리하면 안 될까?”

임구학이가 봉화수 의향을 물었다.

“어르신 말씀으로는 각 임방들을 새로 단장해 사람들을 불러들이라 했는데, 건조장은 해야 할지 어찌해야할지 단언하기 어렵습니다요.”

봉화수도 최풍원 대행수의 명을 받아 행하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내 얘기를 좀 들어보게! 우리 장회임방이 곡물 같은 잡다한 생필품을 파는 곳이라면 사람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겠지. 하지만 여기는 가죽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라 물건을 팔러오는 사냥꾼이나 사러오는 장사꾼들이 모두 한정돼 있다네. 그러니 굳이 임방을 단장할 필요가 없다네. 그렇지만 건조장은 꼭 필요하다네. 건조장이 없어 임방 마루나 방에서 말리다보니 집안에 악취가 진동하는 것도 문제지만, 겨울철 가죽이 한꺼번에 몰려들 때면 미처 말리지를 못해 첩첩이 쌓아두었다가 썩어버려 버리는 것이 태반일세. 건조장만 하나 있다면 좋은 물건을 곱절도 더 만들어낼 수 있다네!”

임구학이가 가죽 건조장이 왜 필요한지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객주님 뜻은 분명히 알겠지만, 저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요.”

임구학은 절실했지만 봉화수 역시 생각지도 못한 일에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임 객주의 뜻에 따를 수도 없었다. 최풍원 대행수의 분명한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사람을 최풍원 대행수의 뜻을 물으러 북진여각으로 사람을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각 임방의 사정을 들어보지 않고 북진여각에서 생각만으로 일을 추진한 것이 발단이었다.

“각 임방이야 그 임방주들이 제일로 잘 알 것 아니겠는가? 사사로이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 그리하는 것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장사를 잘해보려고 하는 것이니 임방에서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리 처리하면 대행수 어른께서도 그리 책망하지는 않을 듯싶은데…….”

임구학이가 봉화수를 설득했다.

장회임방은 남한강 가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육로와 접하고 있어 물길과 땅 길이 다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두 길이 모두 장회임방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장회가 워낙 깊은 산중의 벽지에 있다 보니 주변에 큰 마을이 발달되지 못해 나루터도 역도 발달할 수 없었다. 장회의 열악한 입지여건 때문이었다. 장회는 큰 물길과 큰 산들이 맞붙어있다시피 해서 손바닥만한 평지도 없었다. 사방이 물과 산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옥순봉과 사인암 같은 경승지 뿐만 아니라 눈 가는 곳마다 풍광이 뛰어나 사시사철 고관대작과 시인묵객들의 뱃놀이와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런 빼어난 풍광도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양반님네들 눈요기 꺼리고, 눈만 뜨면 먹고 살 걱정이 첩첩한 백성들에게는 보리쌀 한 되박 만도 못한 소용대가리 없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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